흐린 세상 맑은 말 - 정민 교수가 가려 엮은 명청 시대 아포리즘
정민 지음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 며칠 내 자신의 행동을 떠올려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욱했던 순간들이 많았다.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아이에게 소리를 꽥 지르고 남편에게 얼굴을 붉혔던 순간들이 많았다. 왜 그랬을까. 호르몬의 변화라고 하기엔 너무 비겁한 변명이라 자괴감에 빠져들 무렵 이 책을 만났다. 띠지에 적혀있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사회를 식혀주는 대바람 소리!’라는 문구에 마음이 놓였는지도 모르겠다.


불가에서는 탐⦁진⦁치를 삼독이라 하여 수행에 번뇌를 일으키는 세 가지 독소로 여긴다. 물건에 집착하는 탐욕의 마음, 평정을 깨트리는 분노, 판단을 흐리는 어리석음이 그것이다. (27쪽)


  큰 의미로 보자면 인생도 수행이라고 할 수 있기에 세 가지 독소가 그냥 지나쳐지지 않았다. 어쩌면 현재 내가 모두 가지고 있는 독소가 아닌가 싶어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니라고 하지만, 저 독소들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내면의 나는 이미 독소에 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그것들이 어디서부터 생겨났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 있었다.


‘조금만 더’ 하고 바라기만 한다면 만족은 없다. ‘이만하면’ 하는 마음속에 절로 남는 즐거움이 깃든다. (45쪽)


  내 안의 독선과 주변의 환경적인 요인들이 한데 뭉쳐져 만족을 경험하지 못하게 함으로 내 안의 독소들이 가득 들어찬 것이 아닌가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 ‘쉬임 없이 한결같이 노력하는 삶은 아름답다.(81쪽)’고 했는데 나는 그런 아름다움을 한 번이라도 맛본 적이 있는지 떠올려본다. 늘 내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생각하면서도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가운데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밥이나 돈만 가지고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혜의 손길은 수렁 같은 절망 속에 드리운 든든한 동아줄이(219쪽)’란 말처럼 지혜를 얻고, 남을 위해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바랐다.


  총 5장에 걸쳐 옛 성인들의 글을 해석하고 그 아래 짧게 저자의 생각이 덧붙인 글들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얻었다. 그리고 책에 관한 글을 보면서 눈빛이 밝았다가 실망했다 번복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있었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보면 좋은 벗을 얻은 것 같고,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으면 옛 친구를 만난 것만 같다.(독서십육관)’는 글 앞에서는 고개가 끄덕여 지다가도, ‘책에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도 좋지 않다. 까닭 없이 예민해져서 감상적이 되기 쉽다.(119쪽)’라고 말하면 마음이 찔려서 심장이 덜컹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나에게 책의 의미가 수시로 바뀌니 정면 돌파 할 수 없는 어려움을 들킨 것만 같았다.


  이렇듯 많은 글이 있고 많은 생각이 묻어 있어 각자의 처한 마음 상태에 따라 와 닿음이 다를 것이다. 옛 글이라 지금과 맞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 잔소리처럼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오래전에 나보다 먼저 살다간 이의 자취 속에서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감격스런 순간이 있었다. 나만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고, 나만 고민스러운 게 아니라는 알듯말듯한 위로가 순간순간 있었던 것 같다. 그랬다면 이제 내 자신을 다듬어 볼 차례다. 세상의 거침으로부터, 내면의 가시로부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