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풍과 소강
장 자끄 상뻬 글.그림, 이원희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상뻬 할아버지의 책을 거의 다 소장하고 있으면서 그만의 매력이 뭐냐고 묻는다면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익살스러우면서도 세세한 그림들이 좋고 그에 따른 풍자와 뭔가 완벽히 이해할 수 없는 글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그간 신간이 출간되면 구입해놓고 상뻬 할아버지가 이 그림들을 그리느라 공들였을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읽고 덮어버린다. 가끔 다시 책을 열어볼 때도 있지만 내가 보지 못한 그림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냥 좋다. 그러다 <뉴욕의 상뻬>를 읽게 되었고 작업할 때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디서 영감을 얻는지 등등 부수적인 얘기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니 좀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하다. 꼬불거리고, 산만하고, 의미를 명확히 알 수 없는 그림들. 그리고 그 아래 쓰인 모호한 글들을 만나는 순간, 순식간에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 책을 보고 있는 동안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왔다. 저자의 그림과 글을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안도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면서 단박에 이해를 할 때도 있고, 무슨 의미인지 몰라 한참을 들여다 볼 때도 있는데 그 아래 쓰인 글을 보면 더 난해해진다. 우리의 정서와 다른 것도 있고 저자의 시선에서 본 역사와 문화가 익숙하지 않기에 그런 것도 있다. 그럼에도 그것조차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나를 보고 있으면 그간 저자와 함께 한 시간이 꽤 돈독해졌음을 인식하게 된다.


  수다스러움, 익살, 주책, 청승, 유쾌한 기분들이 모두 느껴지는 그림과 글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아 일탈의 기분이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양떼의 무리 속에서 빠져나온 두 마리의 양이 다른 길로 걸어가면서 동료에게 ‘나는 너의 자유분방한 정신이 좋아.’라고 말하던 그림처럼 내 기분이 꼭 그랬다. 저자를 통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 처음에는 단지 삽화가 좋아서 저자의 책들을 모았고 그러다 큰 그림으로 보고 싶어서 신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이제는 오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혹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를 들어가려는 매개물로 저자의 책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떤 작가를 좋아하게 되면 오로지 작품으로 만나기를 고집한다. 자칫 사생활이나 작품의 배경들을 알게 되면 내가 생각하는 저자의 이미지가 바뀌는 것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 생각이 변하고 있다. <뉴욕의 상뻬>를 읽지 않았더라면 늘 그렇듯이 그의 그림을 휙휙 지나쳤을 것이고 좀 더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작품세계에 많이 투영되듯이 이제는 저자의 삶도 들여다보면서 그에 따른 깊이를 만끽하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