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리의 이야기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가 온 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을 움츠리면서 문득 예전에 본 광수생각 만화가 생각났다. 이렇게 영하권으로 기온이 떨어지면 노숙자들의 동사가 잦은데 체온이 떨어질 무렵 그들에게 컵라면을 건네 온기를 유지시켜주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존 버거가 그려낸 이 소설의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니 자연스레 그 만화도 생각났고 부디 날씨 덕분에 몸도 마음도 움츠려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도시 근교의 쓰레기장 생 발레리. 그곳에는 노숙자들이 산다. 그리고 그런 노숙자 곁에서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개 킹이 있다. 킹의 시선으로 본 노숙자들의 삶이라고 하면 조금 거창하게 느껴지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세월을 함께 지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든다. 아무도 관심을 가질 것 같지 않은 비코와 비카의 사랑 이야기부터 각자의 내면에 든 은밀한 이야기까지 킹은 그 모든 것을 꿰뚫고 있는 듯하다. 킹의 배려와 진득함은 대화를 하면서 발휘되고 당사자들도 놀란다. 킹과 대화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이, 오히려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에 고맙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저자는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킹의 시선으로 바라본 노숙자들의 모습, 그들과의 대화, 그리고 쓰레기장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서정적인 느낌을 받았다. 비극보다는 현실적인 모습을, 전혀 쓸모없을 것 같은 공간에도 철학이 있음을 킹을 통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말해주듯 그곳에 머문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서정적인 문장과 부딪히는 그런 현실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소외된 계층에게 다가가 친구가 되어주고 가족이 되어주고 돕는 이가 되어주는 것처럼 킹의 역할이 지대해 보였다.


  하지만 그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킹을 통해 만나왔던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떠돌이 개였지만 킹에게도 그곳이 거처였고 고향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음을,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만나왔던 모든 이들이 그러한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없음을 예감한다. 끝내 다른 이들에 의해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킹의 시선이 다른 이들보다 나았음을, 편견 없이 보는 킹의 시선을 닮기란 여간 녹록치 않음을 소설의 끝이자 그곳의 마지막을 보며 마음이 착잡해졌다.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묻지도 않은 내면의 이야기를 쏟아내던 일. 킹을 바라본 그들은 동물이지만 사람보다 더한 편안함, 위로 그리고 든든함을 느꼈다.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 대한 허무가 이면에 존재한 것도 사실이다. 오늘의 나는 과연 누구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