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남의 날개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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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십이국기>에 빠져 있던 나날이었다. 시리즈를 연달아 읽다 때맞춰 도착해 준 6권을 순식간에 읽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책이 다 읽히는 게 아쉬울 정도였고 나만 알고 있는 세계가 있는 것처럼 오랜만에 환상 속의 공간을 그려보았다. 현실로 인식하고 그 세계의 이야기가 더 읽고 싶어졌지만 아직 출간 소식이 없어서 아쉬울 뿐, <십이국기> 다음 이야기가 간절하게 기다려지는 요즘이다.


  이번에는 공국의 이야기였다. 왕좌가 오랫동안 공석이 되자 백성들은 살기 힘들어졌고 요마는 들끓었다. 하지만 왕은 나타나지 않았다. 기린이 직접 왕을 선택하기도 하지만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봉산에 들어가면 왕의 기운이 느껴지는 이를 역시나 기린이 선택한다. 그러나 살아가기가 힘겹고 봉산에 들어가는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그렇게 왕이 되려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국에서 봉산에 들어가려면 요마가 나오는 길을 가로질러 가야 하기 때문에 굳이 확실하지도 않는 길을 가려는 자가 많지 않았다.


  이제 열두 살인 소녀 슈쇼는 그런 어른들이 마땅치 않았다. 도전도 해보지 않고 언젠가는 나라가 안정되겠지 기다리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봉산에 들어가기로 한다. 거상의 딸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그랬기에 세상 물정도 모르는 면도 있었고, 같은 나이의 아이가 하녀라는 이유로 헐벗고 못 먹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이 그런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봉산에 오르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소녀였다.


  열두 살 아이가 이런 다짐을 했을 때에는 왕이 되는 여지가 충분하기에 그럴 거라는 추측도 잠시 봉산에 오는 길이 만만치 않음을 알고는 초조해졌다. 이유는 다를지라도 슈쇼가 생각하는 것처럼 봉산에 오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왕이 되는 건 둘째 치고 봉산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야말로 요마가 활개를 치고 다니는 공간으로 인간무리가 들어가는 셈인데 위험이 닥칠 때마다 조마조마한 가슴을 부여잡느라 혼났다. 그 험한 길을 슈쇼 혼자 가는 게 무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슈쇼는 무모할 정도로 영특했다. 우연히 만난 간큐를 봉산까지 가는 길잡이로 삼고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리코의 도움까지 받게 된다.


  봉산에 가려면 황해로 들어가야 한다. 그곳을 경험한 자의 도움이 없으면 들어가고자 하는 이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 간큐는 황해에서 길들일 수 있는 요마를 사냥하는 사람이었기에 그나마 황해를 알고 있었다. 봉산에 오르려는 무리들과 섞여 가면서 굳이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공유하지 않으려는 이유 때문에 슈쇼와 다투고 슈쇼는 그 길로 다른 무리에 합류해 버린다. 슈쇼가 합류한 이는 척 봐도 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그 만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데리고 온 가솔들을 희생시키고 무모하게 전진하느라 요마를 인간의 무리에 끌고 오는 위험까지 저지른다. 간큐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도 없고 슈쇼의 입장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지만 슈쇼가 다른 무리에 합류해서 여행을 지속할 땐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났다. 영리하고 똑 부러져서 어리다고 무시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그때만큼은 알밤이라도 콩 놔주고 싶을 정도로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간큐와 빚었던 갈등과 자신이 왕이 된다면 감내해야 할 책임이라는 것에 대해 슈쇼는 많은 것들을 깨달아간다. 일련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성숙해져갔다. 아이답지 않은 영특함이 때론 기가 눌리게 할 때도 있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무모하더라도 옳은 길로 가려는 인성에 왕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봉산으로의 여행은 많은 깨달음과 많은 이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정체를 숨기고 자신을 도왔던 리코의 정체가 밝혀졌을 때 뭔가 짜릿한 기분이 들어 이 책을 읽고 있는 순간이 더 즐거워졌다. 다음 이야기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출간일을 기다리는 기분. 그나마 올해 읽은 시리즈물 중에서 기다리는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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