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라디오
모자 지음, 민효인 그림 / 첫눈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20대 초반까지 일기를 썼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일기 쓰는 게 귀찮기도 하고 할 이야기도 많지 않아 관뒀는데 가끔 짐 정리를 하다 옛 일기장이 나오면 일기를 쓰지 않은 게 못내 아쉽기도 하다. 일기 속의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我)이면서도 색다른 나를 발견하는 일이라서 때론 낯설기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는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펜을 들어서 노트에다 뭘 쓴다는 게 영 어색하기도 하고 그럴만한 맘 적 여유가 없어서 리뷰에다 종종 내면의 이야기를 하는데 그럼에도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리뷰는 어찌 되었든 타인을 의식하기 마련이고 일기는 오로지 나와 마주하는 일인데 그런 비밀(?)스런 공간과 시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요즘에 조금씩 든다.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된 이유에는 이 책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마치 일기를 들여다보듯 자신의 이야기와 평소의 생각들이 짤막하게 혹은 고백하듯 담겨 있어서인지 오래전에 멈춘 일기를 쓰고 싶단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 일과를 보내다보면 문득 문득 드는 생각들이 있는데 길게든 짧게든 글로 써 볼 생각은 하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그런 생각들이 흘러버리는 게 아쉬웠다. 저자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이 많거나 공감 혹은 생각의 연장선을 느껴서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현재의 이야기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 던지 아예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내면 깊은 곳 오래 된 이야기들이 꺼내어져 나올 때마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짤막한 글과 함께 꼼꼼한 일러스트와 함께하니 내면의 이야기는 타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오로지 나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과 타인을 의식하며 하는 이야기는 무엇이 다를까? 전자는 진솔하지만 거리낌이 없을 테고 후자는 정중하지만 선을 그어야 하는 이야기가 많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전자의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뭔가 특별하거나 어떠한 문장을 보며 감탄하는 일은 적어도 마치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듯 거리감이 아닌 바짝 붙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아보며 나의 내면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는지 잠시 멈춰보는 것이다. 그런 멈춤이 있는 가운데 나의 생각을 좀 더 정리하며 살고 싶은 생각이 들고 무심코 보내버린 하루가 어쩜 나에게 가장 특별한 날들이란 마음을 다져보는 것이다.


  나를 가장 나답게 하는 게 뭘까? 책을 읽을 때, 그리고 읽고 난 책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쓸 때가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단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하다거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종종 나란 사람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살다 사라지는 건 아닌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꼭 무언가를 남기고 더 나아가야만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 남아야 멋진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종종 나의 내면을 아무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없는 현실에 팍팍함을 느끼기에 소소하더라도 나만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어떨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게 뭔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소소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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