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페코로스 시리즈 1
오카노 유이치 지음, 양윤옥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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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적으로 엄마,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게 된다. 타인의 이야기일지라도 분명 그 안에서 나의 부모를 떠올릴 것이고, 당신의 자식이라서 행복하다는 기쁨보다 너무 못난 자식이 되어서 미안하다는 탄식이 먼저 나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조금은 망설여졌다. 내 엄마를 어떻게 떠올릴까, 울컥하지는 않을까, 괜히 우울하지는 않을까 등등 책을 읽기도 전에 쓸데없는 걱정들이 한껏 올라왔다.


  이런 나의 걱정이 기우에 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주폭도 심하고 환청, 환각에 시달리는 아버지와 곁에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두고 도망치듯 도쿄로 떠난 주인공. 그리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젖먹이 아이만 데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지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때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어머니의 모습을 자신이 몸 담답고 있던 잡지에 조금씩 만화로 그려나갔다고 한다. 그렇게 어느 정도 분량이 되자 자비로 출판했고 우연한 계기로 이 만화가 퍼져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그 감동이란 게 무엇일까. 아무리 많은 타인이 감동을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받지 않으면 그건 끝까지 타인의 이야기로 치부 될 뿐이다. 감동의 농도는 다를지라도 저자의 만화를 보면서 찡함보다 안도감을 느낄 수 있어서 오히려 나는 다행이었다.


  50~60대가 두려워하는 질병 1위가 치매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의학이 발달해서 검사를 통해서 치매를 예방할 수도 있다는데(검사 비용은 좀 비싸다고 한다.), 나 역시 치매에 걸린 내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직접 겪어보진 않았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면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누누이 들어온 터라 이 책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20대 초반에 엄마가 밭에 농약을 뿌릴 때 마스크를 하지 않아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는데 며칠 간 엄마를 간호한 적이 있었다. 약 때문에 환상이 보이는 엄마가 굉장히 낯설게 느껴지고 두려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치매 환자도 그와 비슷한 양상이 아닐까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굉장히 귀엽고 낙천적이고 사랑스럽게 표현해냈다. 지방의 무명 만화가의 만화가 엄청난 사랑을 받는 것도 부족해서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진 건 분명 나름의 매력이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저자가 그려낸 어머니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귀엽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대머리인 자신을 양파에 비유하면서 작아지고, 점점 동글동글해지는 어머니 또한 사랑스럽게 그려냈다.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늘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는 게 고통이 아닌 오히려 잃어버린 기억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역자의 말마따나 아버지의 연금으로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표현이 민망하다고 했지만, 그런 어머니를 만나러 가고 만화로 담아내는 게 나 역시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다.


  대부분 휠체어에 앉아 있는 어머니지만 어머니의 기억을 좇다 보면 젊은 시절 두 형제를 키우면서 고생한 어머니, 아버지의 술주정으로 힘들어한 어머니의 모습을 낱낱이 만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둡지 않고 아련하게 추억할 수 있게 만드는 그림의 힘을 느꼈으며 그렇게 자신을 힘들게 했음에도 남편을 만나는 것을 기뻐하고, 그런 추억에 갇혀 있는 저자의 어머니의 모습이 찡했다. 당장 우리 엄마를 찾아가서 어리광을 피우고 싶은 충동까지는 아니더라도(난 불효자인가 보다. 흑),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어떠하며 앞으로 기억하게 될 모습은 무엇일지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면서 웃을 수 있고 함께 보낸 시절을 추억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몇 번인가 나도 만화를 보면서 풋, 웃음을 터트렸고 우리 엄마가 내 곁에 오래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해보았다. 앞에서는 엄마한테 달려가 어리광을 피우고 싶을 정도의 충동은 아니라고 했는데 이렇게 나의 엄마를 곱씹어보니 역시나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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