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없이 살고 있나요? - 호스피스에서 보낸 1년의 기록, 영화 [목숨]이 던지는 삶의 질문들
이창재 지음 / 수오서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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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몸도 피곤하고 정신이 산만한 상태에서 꺼내든 책이었는데 이 책을 덮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처음 책을 펼쳤을 때와는 달리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신이 또렷했고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왔다.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 내 주변에 놓여 있는 수많은 물건들과 이 장소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내 목숨을 다하면 내가 살아 있었다는 걸 이 장소, 이 물건, 이 시간들이 과연 기억할까 싶었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혼란스러워졌다.


  먹먹한 마음을 부여잡고 핸드폰 메모장을 꺼내 유언장 쓸 것, 한 달에 한 번 가정예배 드릴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그 외에 당장 생각나는 게 없어서 이 두 가지만 썼는데 유언장은 실행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20대 때 노트에 유언장을 쓴 적이 있었는데 쓰다말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와 달리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가 둘씩이나 있는 내가 유언장을 쓰기란 그때보다 더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실행을 미루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암이라는 병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많은 당부를 남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러기가 참 쉽지 않은데 이런 담담함이 어떻게 나올까 싶었다.


  당장 내게 앞으로의 생이 3개월 혹은 6개월뿐이라고 한다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 상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호스피스 병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그런 일이 꼭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불안감과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각각의 살아온 삶이 다르고 성정이 다르듯이 이 책 속에서도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도 모두 달랐다. 내가 과연 저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면 과연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을까? 전혀 가늠할 수 없었지만 부정도 하고 원망도 하고 절망에 빠지다 결국엔 죽음을 받아들일 것 같았다. 그리고 신변정리를 하면서 내 삶을 되돌아볼 것 같지만 과연 그런 시간이나마 내게 주어질지 의문인 게 삶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 책 속의, 대부분 고인이 된 분들의 마지막을 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슬프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눈물이 참 많이 났다. 호스피스 병원의 기록이니 분명 이런 감정을 끌어낼 것 같아서 이 책을 가까이 두면서도 읽기를 한참을 미뤘었다. 그러나 이 책을 만나고 읽은 게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 가까이의 사람이(나를 포함) 만약 암 판정을 받아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꼭 호스피스 병동에서 작별 인사를 하게끔 만들어 주고 싶었고, 금세 무감각해지겠지만 앞으로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기로 다짐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반짝하고 드는 마음이 아니라 꼭 지키겠다는 결심이 드는 다짐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내 삶을 관망하는 게 아닌 그 안으로 뛰어들게 결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후유증은 금방 찾아왔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불끈 힘이 솟아 단박의 변화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기력감이 찾아왔다. 자꾸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고 죽음이 삶을 덮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러한 책을 읽었고, 앞으로 이렇게 살아가자 문자를 보내놓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덜 내야지 다짐했지만 그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 변화는 분명 일어났다. 아이가 잘못했을 때 왜 그랬냐고 다그치면서 들었던 순간적인 분노와 절제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차분해져 있음을 느꼈다. 거기다 습관처럼 쉬던 한숨이 많이 줄어들었고 항상 남편에게 더 바라던 마음 대신 내가 좀 더 수고를 더하니 뭔가 평화로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너무 멀리 말고 앞을 보며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장기적인 계획도 필요하고 멀리 보는 시각도 필요하지만 그 먼 미래가 주는 막연함 때문에 가까이에 주어진 일상을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는지. 멀건 짧건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역시나 순간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답답함을 주기도 하고 우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적어도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막연한 기대는 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아가고 순응하는 수밖에. 내가 이 책을 읽고 힘겹게 받아들인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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