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빈 방 - 죽음 후에 열화당 영혼도서관
존 버거, 이브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 열화당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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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나의 노년을 생각해 본다. 나는 몇 살까지 살 수 있을까? 남편과 아이들과 오래오래 함께 살 수 있을까? 상처를 가득 안은 채 혼자 남겨지거나 혼자 먼저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들.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떠남과 헤어짐에 대한 쓸데없는 생각들이 종종 나를 지배할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존 버거가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쓴 글을 읽고 있자니 먼저 떠나가는 것도, 홀로 남겨진 것도 그렇게 슬프고 절망적인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끼리 오래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내 곁에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의 차이를 알기 때문에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안정감과 힘이 된다는 것을 말이다. 존 버거와 아들에게 부인이자 엄마인 존재가 더 오래도록 머무를 수 있었더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녀는 그들의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남편과 아들이 그녀를 추억하면서 사진과 글을 남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마음을 무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담담하고 읊조리듯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서인지 극적이진 않아도 마음에 와 닿았다. 오로지 떠난 사람을 위해, 그리고 함께 얽혀있는 추억과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비록 떠난 사람이지만 추억이 깃든 물건과 장소, 기억까지 함께한다는 생각이 들어 절망스럽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떠난 뒤에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계속 뒤돌아보고 있소. 그리고 당신이 그런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당신은 시간을 벗어난 곳에,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으니 말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당신은 우리와 함께 있는 거요. (31쪽)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을 가지고 있을까? 문득 아내와 엄마를 추억하는 두 남자의 마음이 절절하고 찡하게 느껴지면서도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지 멈칫해졌다.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잘 모르는 어리석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나라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을 하지 않고 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순간을 살아가면서,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으니 하자, 하자 하면서도 나중으로 미루는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을, 사랑을 미룬다고 나중이 있을까? 종종 남편과 별 거 아닌 일로 말다툼을 하고 삐쳐 있을 때마다 나의 어리석음을 한탄해 보지만 이런 글을 만나면 부끄러워진다.


 

  떠남은 순서가 없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다는 누군가의 말에 어느 정도 동조하면서도 그렇기에 더 삶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늘 당연하단 듯이 내 곁에 존재하는 것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음에도 감사한 마음이 부족한 채 더 큰 것을 바라며 살진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로 인해 현재 내게 주어진 것들에 감사해 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진부할 수도 있으나 내 삶은 진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도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수밖에 없으리라. 그것이 내게 주어진 삶의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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