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히어애프터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회사와 학교를 향해가는 궤도, 저녁 찬거리를 사러 혹은 친구나 연인을 만나러 나가는 궤도. 그것은 전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 번 어긋나면, 부럽고도 그립게 바라볼 뿐이라는 것을 이렇게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78쪽)


인생을 조금씩 앞으로 밀어낼수록, 내 맘대로 되는 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내 맘대로 하려고 억지로 용을 쓸 때 부작용이 고스란히 나에게 온다는 사실도 말이다. 마음을 비우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앎에도 인간인지라 종종 감당 못할 욕심이 나를 지배하는 것을 묵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현재에 감사하자,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자고 하지만 며칠씩 자괴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욕심에 대한 종류는 여러 가지겠지만 생명에 대한 부분은 다가갈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지기에, 내가 만약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온전히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차를 타고 이동하다 교통 사로고 잃고 자신은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유령이 보이는 주인공 사요코. 이렇게 얘기하면 무슨 공포소설 같지만 사요코가 보는 유령의 형태는 무서운 대상으로 다가오는 게 아닌, 형상이 좀 두루뭉술하고 보통의 인간처럼 일상을 보내는 유령이 대부분이다.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요코는 연인을 잃음과 동시에 큰 부상을 입고 회복한 뒤라 삶을 통달해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자주 가는 술집의 사장은 그런 사요코에게 얼이 빠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사고현장에 얼을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연히 매일 같은 장소에서 마주하는 유령의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된 아타루와도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고 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평범했던 사요코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바뀌었다. 바뀌었다기보다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인의 부모님과 계속 연락하면서 그가 남긴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연인이 곁에 없다. 그리고 예전과 같은 신체를 가질 수 없기에 영혼까지 바뀌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성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모와 옷차림으로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한 사요코를 볼 때마다 생각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사요코의 입장이었다면 잃어버린 연인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을 비극적으로 받아들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했을 것이며 변해버린 외모와 영혼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요코는 잘 견디고 있었다. 이 세상을 떠나버린 연인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은 간직하되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이전과는 좀 더 다른 삶을 기꺼이 살아가고 있었다.

섞이는 건 간단한 일이야. 저세상과 이 세상이. 원래 섞여 있잖아. 과도하게 섞이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무상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갈고닦는 거지. (155쪽)


사요코는 저세상과 이 세상의 섞임을 경험했다. 그리고 ‘과도하게 섞이지 않도록 자신을 갈고닦’고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이 저자의 문체에서 우울하거나 극도의 침잠을 경험하지 않도록 뭔가 앙증맞으면서도 적당한 무게감으로 그려냈다. 이 작품이 아홉 번째로 만나는 저자의 작품인데 다소 무거운 주제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특유의 소소함과 아기자기한 문체로 잘 녹여낸 것 같다. 무엇보다 저자는 일본 대지진 사건을 겪고 나서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 이 불안한 나날 속에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되어 이 소설을 썼다고 고백했다.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문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것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일로 타인을 위로하는 행위가 경건하게 느껴진다. 이 소설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입장이 다 다르겠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나서인지 조금은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고 싶어졌다. 저자의 말처럼 이런 문인들의 행위가 단 한 명에게라도 위로가 닿길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