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이 깨어나는 마을
샤론 볼턴 지음, 김진석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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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나는 뱀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라 흔히 볼 수 있는 게 뱀이었고 동네 오빠들을 따라다니며 거칠게 놀다 보니 뱀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으며 아무 생각 없이 뱀을 괴롭히기도 했다. 몇몇 종류의 뱀들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한 번은 논두렁을 걷다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을 밟은 적도 있었다. 내가 먼저 공격하지 않는 한 뱀도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길을 가다 뱀을 봐도 그냥 ‘뱀이네!’ 하고 지나쳤다. 그러다 중고등학교를 소도시에서 보내게 되면서 점점 뱀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그러다보니 이제는 뱀을 보면 놀라고 무섭고 피하고만 싶어진다. 더군다나 풀숲이나 논두렁에서 보던 뱀들이 집 안에서 발견된다면 그 집을 떠날 만큼 두려울 것 같다.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는 클래라는 아기 침대 안에 뱀이 있다는 이웃의 전화를 받는다. 커다란 살무사의 출현이 의문스러우면서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라 클래라는 뱀을 제거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뱀의 출현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꾸준히 나타난다. 책 제목처럼 어디선가 뱀 알들이 숨겨져 있다 모두 부화해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온 집안에 뱀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경찰과 함께 뱀들을 처리하다 영국에서는 발견될 수 없는 뱀 타이판을 포획한다. 독사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타이판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었고 파충류학자 숀 노스를 통해 파푸아뉴기니에서 온 뱀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타이탄의 출현도 의문스럽지만 마을에서 뱀에 물려 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숀 노스를 통해 뱀에 직접 물린 것이 아닌 독액을 주입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난다. 왜 그 작은 마을에서 뱀들이 나타났고 그 뱀들의 독으로 위장한 죽음까지 드러나는 것일까? 클래라의 작은 의문으로 시작된 의심은 점점 커져 그동안 잊히고 숨겨져 왔던 그 마을에 얽힌 비밀까지 드러나게 된다. 1958년 교회에서 일어난 불로 인해 사람이 죽고 그 당시의 목격자들이 살아있지만 한명씩 살해되는 상황. 클래라는 교회에서 불이 나던 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야만 뱀들이 출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결코 친근하다고 할 수 없는 뱀이라는 매개물로 점점 드러나는 비밀의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책장을 부지런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뱀의 출현으로 풀어내는 구성도 탄탄했고 얼굴의 흉터 때문에 방어적인 자세로 작은 마을에서 수의사로 살아가는 클래라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기도 했으며 항상 그녀를 도와주는 경찰 맷과의 알듯말듯한 로맨스도 설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실수로 얼굴에 심한 흉터가 나고 그 사건 때문에 늘 괴로워하는 엄마와 끝내 화하지 못하고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살아가는 클래라지만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조금씩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뱀이 나타나고 사람이 목숨을 잃으며 뭔가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자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가 있었다. 거기에 그녀의 마음을 여는데 일조한 맷이 있었고 내심 이 모든 사건들이 해결된 후에 둘이 잘 되었으면 싶었다.

 

그렇더라도 수의사에 젊은 여성인 클래라가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며 뱀과 알 수 없는 인물들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곁에는 맷이 늘 함께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타이판에게 물리고 온갖 위험을 무릎 쓰며 비밀을 풀어가는 클래라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힘겹고 위험한 일을 그 마을에서 유일한 뱀 전문가(?)라는 이유로 감당해야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이 얽혀있었고 지나온 세월만큼 잊고 싶어 할 만큼 끔찍한 배경이 숨어 있었다. 요약하자면 ‘은사를 받았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심각한 남자가 영국의 시골마을에 도착한 후 끔찍하면서도 매력적인 설교를 통해 조용하고 정돈된 주민들의 삶을 혼란에 빠트린 사건(494쪽)’이었다. 비밀은 영원히 숨겨질 수 없으며 감춘다고 해도 죄가 숨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환기시킨 것 같다.

 

긴 호흡에다 인물들의 얽힘, 사건을 해결해가는 중심에 젊은 여성이 있으며, 맷과의 관계가 조금 애매모호하게 끝났다는 한계가 있긴 했지만 지루할 틈 없이 순식간에 읽어버릴 만큼 재미있었다. 결말이 궁금해서 빠르게 읽어 내려가거나 무게감 없이 결말에 의미를 둔 소설을 많이 만나왔던 반면, 주인공의 내면의 변화를 통해 문학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서 사건이 원인은 씁쓸했지만 적당한 무게감으로 허무하지 않았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다른 작품이 번역된다면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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