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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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일은 남의 생명을 지켜 주는 일이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생명을 지키는 일이 기본 조건입니다. (여는 글 중에서)

  지금껏 많은 소설들을 만났으면서도 정작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주제가 무엇인지 또렷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분명 소설의 중심 주제가 있을 텐데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랑이야기일까? 아니면 정의에 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삶에 관한 이야기나 막연한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걸까? 이 책에 실린 사랑에 관한 시들과 소설을 만나다보니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또렷한 취향은 없을지라도 그것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던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문학을 넘나드는 수많은 사랑이야기 앞에 제대로 진지했던 적이 있었는지 다시 고민해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읽다보면 정서도 다르고 외국 시(詩)라서 온전히 마음에 와 닿는 시만 만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시들이 탄생 된 배경을 읽다 보면 절절함이 느껴져 그제야 시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와 시인에 얽힌 이야기를 장영희 교수님의 맛깔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만나다 보면 꼭 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런 시들이 탄생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기고한 삶 속에서도 시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그런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럼에도 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나는 그런 뜨거운 사랑, 열정적인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말이다. 영원할 것 같았던 첫사랑이 끝났을 때 깨달았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났을 때 사랑은 사랑으로 치유될 수 있으며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이라는 유명한 <사우보>의 구절을 깨닫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열정적이고 뜨거운 사랑에 시들시들해져갔고 무난한 사랑, 정이 들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짧은가 하면 긴 것이 세월이고, 약한가 하면 강한 것이 청춘이고, 무거운가 하면 짊어지고 가면서 그런대로 기쁨과 보람도 느끼는 것, 그것이 삶의 무게가 아닐까요? (34쪽)

  처음에는 뜨거웠으나 그 뜨거움이 한결같이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기에 오히려 사랑을 남녀 간으로 치부하기보다 가족,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삶 자체에 옮겨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이 책에 실린 시들과 소설들에 남녀의 사랑만 대입하다 그 속에 촘촘히 엮여있는 삶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삶 속에도 수많은 사랑이 존재하고 충분히 사랑할 기회가 있음에도 늘 회의적인 태도로 당연하게 주어진 것 마냥 살아가는 삶에 반성하게 되었다.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내 존재 자체,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을 사랑해도 충분한데 늘 이상향만 바라보니 내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이 느껴졌던 순간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깊은 밤 스탠드 아래서 글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책 안에 실려 있는 사랑에 관한 시들, 치열한 사랑을 하고 떠난 시인들, 그들이 남긴 시를 통해 삶, 그리고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자 이 순간 자체가 내게 소중한 시간임을 알았다. 책 제목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도 말이다. 모든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않기로 했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거나 허황된 미래를 꿈꾸며 삶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다짐만으로도 이 책 속에 실린 시들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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