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보고 싶거든 -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만 들리는 대답
줄리 폴리아노 글, 에린 E. 스테드 그림, 김경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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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고래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에 마지막엔 당연히 고래와 만나는 모습을 예상했었다.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이 등장하니 어떤 이유에서든 고래를 볼 수 있을 거라며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인내를 하고 고래를 보기 위해 다양한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고래의 일부부만 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이건 뭘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한참이 지난 후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조금 더 다르게 다가왔다. 오로지 아이가 보고 싶어 하는 건 고래라고 단정 지었는데, 어쩌면 그 고래라는 것이 우리가 소망하는 모든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 것이다.

  고래가 보고 싶다면 먼저 창문도 있어야 하고, 바다, 저건 고래인지 생각할 시간 등등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고래가 아닐 경우에 다른 생물로 인정할 시간은 물론이고 고개를 기다릴 최적의 환경이 필요하지만 너무 편안하면 고래를 놓칠 수도 있으니 적당한 안락함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고래보다 더 달콤한 장미라던지 그런 것에도 한 눈 팔면 안 되며 고래가 아닌 것에 마음을 절대 빼앗겨서도 안 된다고 한다. 고래보다 더 관심을 끄는 것이 있어도 오직 고래를 보겠다는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해선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아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일은 인내였다.

  고래를 보기 위해 이런저런 조건을 만들어가지만 고래를 보기 위한 기다림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인다. 그 모든 역경과 유혹을 떨쳐내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만 겨우 고래를 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진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가까이에 와 있는 고래가 그런 인내를 모두 이겨냈을 때 드디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고래가 하늘 높이 치솟아 아이에게 온전한 모습을 보여줬거나 바다에 나가 아무런 기다림 없이 단박에 고래를 보았다면 고래를 만났다는 기대감이 훨씬 떨어졌을 것 같다. 아이 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낼 고래를 상상하면서 책장을 덮으니 기뻐할 아이의 모습과 그런 아이와 눈을 마주칠 것 같은 고래가 생각나 괜한 웃음이 났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이에겐 인내의 긴 시간 끝에 찾아온 것이 고래였지만 다른 것을 대입해 본다면 더 쉽게 와 닿는다.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그 안에 대입해 보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단박에 깨닫는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실천이 되지 않아 잠시 가졌든, 오랫동안 간직했든 그 꿈을 이룬다는 건 쉽지 않다. 또한 '고래' 같은 꿈이 없을 수도 있다. 꿈을 가질 때 좀 더 삶의 목표가 뚜렷하고 때론 좌절도 하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지만 꿈이 없다고 해서 실패한 인생이라거나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나도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그건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다. 고래를 보고 싶어 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읽으니 내가 이 아이만큼 노력하고 인내한 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곰곰 생각해보게 되면서, 아이가 고래를 기다렸던 것처럼 지금이라도 그런 기다림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단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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