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지은이: 한강                     출판사: 창비

 

 

 

  이 소설을 펼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고 나서 문체의 아름다움은 알고 있지만 특유의 우울함 때문에 선뜻 책을 펼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5.18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니 아무리 큰 심호흡을 해도 책에 손이 닿질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허비하다 큰 맘 먹고 책을 펼쳤는데 긴 시간을 긴장한 탓인지 읽는 내내 경직되어 있었던 것 같다. 뭔가 끔찍한 모습이 터지고 불행한 모습을 쏟아낼 거란 긴장감. 내가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움츠려 있는 사이에 저자는 5.18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물론 담담하게 끔찍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내가 마주하기 두려워했던 적나라한 이야기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좀 더 편하게 읽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과 함께 유려한 문장 속의 끔찍한 이야기가 한강 작가의 역량을 더 빛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5.18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면서 나는 무엇을 보길 원했던 걸까? 적나라한 끔찍함? 아니면 사건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기록 문학을 원하면서 내가 겪지 못했던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을까? 책장을 덮고 나서도 명확하게 내가 뭘 원했는지 모른다는 걸 깨달았으면서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라는 건 인정하게 됐다. 정말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불행하고 억울함 죽음. 죽은 자보다 남겨진 자에게 더 깊은 상처가 되는 그날의 사건들이 그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지배하는지 똑똑히 봤다. 책을 읽다 5.18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면서 숫자로 표기되어 있는 사망자, 실종자, 피해자가 낯설게 느껴졌다. 과연 저 숫자가 진실일까? 이 작품 속에서만 보더라도 한 사람의 죽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안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말이다. 그래서 자료의 숫자가 낯설게 느껴졌고 그러한 폭력을 휘두른 이에 대한 분노도 일지 않았다. 내가 겪지 않았기에 무관심으로 보는 시선이 아닌,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지 모를 거라는 데서 오는 차가운 시선이었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51쪽)

 

  그럼에도 억울한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겐 힘이 되고 희망이 되었을 삶인데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죽음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죽음을 맞은 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다. 막내 동생을 잃고 사이가 갈라져버린 형제, 그 아들을 평생 마음속에 품고 있다 한을 드러내는 어머니의 고백이 서럽고 서러웠다. 죽음을 맞이한들 그 상처를 지울 수 있을까? 그런 행위를 저지른 이는 더 잘 살아가고 있는데 자식의 억울함 죽음을 대신해 그들의 몸을 갈기갈기 찢는다고 해도 그 한이 사라질까? 아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그 전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하지 않는 한 그 상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을 더 후벼 팔 것이라는 사실만 마주한 셈이다.

 

  가족의 죽음을 목도한 이라면 죽음의 이유에 따라 그 상처가 남는 형태가 전혀 달라짐을 알고 있다. 5.18 같은 억울한 죽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카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한 나에게 남겨진 자의 슬픔이 낯설지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옅어지긴 해도 네가 살아있었다면, 그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짙어지는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감히 그 고통을 추측할 수도 감당할 수도 없다. 어렴풋이 가족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뿐 부모가 된 나로서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추측하고 싶지도, 감당하고 싶지도 않다.

 

  하나의 이야기처럼 5.18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면. 어쩌면 관찰자의 입장에서만 멀찍이서 지켜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간 읽어 온 작품과는 달리 뭔가 한 단계 더 뛰어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작품이 발돋움이 되어 앞으로 더 높은 곳에 도달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쓸 거라는 예감. 그래서 선뜻 손이 가지 않으면서도 저자의 작품에 무관심할 수 없는 이유가 더 생겨버렸다. 이렇게나마 5.18의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어서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이렇게 아픈 이야기를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양면성이 잔재했다. 죽음을 피해갈 수 없지만 억울한 죽음을 목도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소중한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져만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