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큼 여기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미란다 줄라이 지음, 이주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 센스도 없고 눈치도 없다는 말을 참 많이 들었었다. 그래서 뭔가 세련되고 센스를 갖춘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외모가 아름다운 것보다 그 사람에게서 흐르는 도시적인 분위기랄까? 관계의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도 감각 있는 사람들. 나는 결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저랬으면 하고 바랄 때가 있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지도 않고 주부의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 부러움조차 희미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감각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 추억이 떠오른 것이다. 제목도 상큼하고 책도 상큼하고 제각각 색깔이 다른 단편이 실려 있는 책을 읽으니 감각은 타고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저자가 워낙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보니 책 속의 이야기도 그만큼 다양한 것 같았다. 딱 읽어도 젊은 작가가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어쩔 땐 평범한 이야기 같다가도 어쩔 땐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은 불행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참 다양한 인생을 맛보았다. 결코 유쾌한 상황이 아닌데도 할머니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모습으로 익살스러우면서 찡한 감동을 일으키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20대와는 달리 3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더 솔직하게 다가올 성에 관한 이야기들. 그 속에 숨어있는 인간의 그릇된 욕망의 표출들이 조금은 불편하긴 했어도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갑작스런 연인과의 결별, 절대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과의 관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불행하고 공감할 수 없는 낯선 이야기들까지 저자가 아니면 쓸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워낙 단편의 색깔이 다양하다보니 한 사람이 쓴 이야기가 아닌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였다. 그만큼 감각 있으면서도 독특했고 옮긴이의 말처럼 사회 부적응자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그래서 피부에 와 닿지 않은 이야기를 만날 때라도 뭔가 더 공감이 가고 엄청난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나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변방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고 있었다. 그건 결코 내가 그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데서 오는 위로가 아닌, 내가 나름대로 괜찮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내면이 그들과 닮아 있음을 인정하는데서 오는 위로가 아닌가 싶다.

  열여섯 개의 단편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것도, 결론이 명확한 이야기도 있지만 대부분 인생이 그러하듯 이어지는 삶 그대로 끝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여러 개의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뭔가 끝난 것 같다는 느낌보다 여전히 그 삶이 지속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삶 속에는 꼭 소설 속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앞을 향해 가고 있는, 혹은 과거에 메여있기도 한 내 삶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내 삶이 달라지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시선을 느꼈다. 그들의 이야기에 비추어 내 삶을 반추해볼 때 불행과 행복, 현실 유지는 그리 어렵지 않음을 깨달아 책장을 덮으면서도 마음이 무겁지 않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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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자 2015-03-26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어딘가 낯익다 했는데 제가 알던 영화 감독이 맞네요! 이분이 책까지 쓴 줄은 첨 알았어요. 그것도 소설이라니, 궁금하네요 어떨지ㅎㅎ

안녕반짝 2015-03-28 07:25   좋아요 0 | URL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저자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