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이상하게도 작품을 읽어보기도 전에 이름만으로 다가가기 어렵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랬고 스탕달, 움베르토 에코, 알베르 카뮈 등이 그랬다. 그리고 밀란 쿤데라도 나에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지되고 있었다. 앞에 언급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 어떻게 변화됐는지 이야기하자면 썰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하고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만 하자면 그의 작품은 <정체성>과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실린 단편 한 편을 읽은 게 전부다. 그 작품을 읽을 당시 어려울 거란 편견하에 긴장하며 읽어서인지 생각보다 난해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나에겐 녹록치 않은 작가다. 그의 전집이 출간 됐을 때도 묵직한 제목들에 지레 겁먹고 달랑 <농담>만 구입한 내게 최근 작품인 <무의미의 축제>를 읽게 된 것은 저자의 글을 놓지 않고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결심의 징조다.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서인지, 의외로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인지, 저자에게 좀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다. 알랭을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 그리고 스탈린과 그의 동지들의 이야기, 또다시 돌아오게 되는 일상이야기들이 굉장히 친절한 소제목으로 묶여 있었다. 예를 들어 ‘샤를은 인형극 공연을 위한 작품을 꿈꾼다’란 소제목 안에는 샤를이 인형극에 대해 말한 것이 이 장(章)의 중심 내용이다라고 알려주는 식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장황한 소제목이 낯설었는데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마치 그들이 펼쳐놓는 이야기가 소설 속의 인물이 중점이 아닌 독자인 ‘나’, 3인칭 시점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지켜보게끔 만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샤를이 꿈꾸던 인형극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 옛 추억을 꺼내 보자면 라디오에서 매일매일 들려주던 구술 소설 같은 느낌도 났다. 정작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끊어서보다 한 호흡으로 들어야 제 맛일 것 같은 이야기지만 무언가 알듯말듯한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 못해서 그 전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재량이 내겐 없지만 이 작품은 그 전에 소설로 읽었던 작품과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출간 됐을 때 그의 팬들은 노작가의 역량 자체에 감동했다고들 하는데 뭔가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드러낸 것 같은 분위기를 만날 수 있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완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며 읽어나갈 수 없을지라도 계속 생각하며 읽어나가게 만드는 힘. 약간의 그런 몽롱함도 좋았고 쉽지 않은 이야기를 독자들이 알아먹지 못하게 배배 꼬지 않으면서 흡인력 있게 써 내려간 문체도 좋았다. 철저히 과정을 즐겨야 하는 작품이라 줄거리를 말해 달라고 하면 ‘읽어봐!’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젊은이가 아닌 연륜이 있는 작가에게서 만날 수 있는 매력이 분명 있다고 말하고 싶다.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33쪽)

  책 속의 인물들은 때론 철학적이면서 인생을 달관한 듯한 이런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툭 뱉기도 하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기도 한다. 그들이 만약 전자나 후자 한쪽에만 기울였다면 지루했을 텐데 저자는 능수능란하게 완급조절을 했다. 그래서 그런 문장을 생각보다 빨리 읽어나갈 때라도 굳이 의미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고, 내게 와 닿으면 닿는 대로 흘러가버리면 흘러가버린 대로 편하게 읽었다. 현재 임신 중이어서인지 배꼽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이 흥미롭기도 했고, 암에 걸렸다는 동료의 말이 거짓인지도 모른 채 그를 새롭게 보게 되는 시선도 뭔가 과장된 것 같으면서도 진실을 말해주고 싶지 않게 만들었으며, 진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스탈린과 칼리닌의 일화도 정치적인 면을 떠나 마치 하나의 에피소드인양 그들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부담 없이 전달되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어떤 메시지를 찾아야 책을 읽은 티도 낼 수 있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늘 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려 해도 늘 쉽지만은 않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에 있는 ‘무의미’를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받아들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냐보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든 사실 하나만으로도 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책장에 고이 모셔둔 <농담>을 꺼내보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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