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 2014 앙굴렘 국제만화제 대상후보작
톰 골드 지음, 김경주 옮김 / 이봄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을 볼 때 단면만 보고 판단하고 그런 이미지가 오랫동안 깨지지 않는 일. 그래서 누군가를 대할 때 첫인상도 중요하고 판단하기가 조심스러운 것 같다. 내가 하나의 이미지로 그 사람을 정의해 버리면 웬만해서는 쉬이 깨지지 않는 게 보통이다. 같은 사건을 같은 장소에서 겪더라도 다양한 시선이 있듯이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판단해버리는 위험성. 성경에 등장하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에서 단 한 번도 골리앗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음이 이 책을 만난 충격이라고나 할까? 늘 이야기의 중심은 다윗이었고 골리앗은 단지 이교도인 블레셋 군인 중에서도 거대하고 포악한 사람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다윗의 물맷돌에 맞아 목숨을 잃었을 때 참 허무한 죽음이라는 생각만 했을 뿐, 골리앗의 시선으로 다윗과의 사건을 보려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골리앗의 이야기가 짤막해서 어떻게 풀어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혀 다른 골리앗을 만날 수 있었다. 키도 크고 몸집도 거대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우락부락하고 포악하고 잔인한 골리앗이 아닌 평범하고 선한 내면을 가진 골리앗이 등장한다. 그는 전사가 아니었고 행정업무가 더 잘 맞는 병사일 뿐이었다. 싸움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낭만적이기까지 한 그가 블레셋을 대표해서 다윗과 싸워야 했던 건 순전히 전사처럼 보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고 명령하에 몸에 맞는 거대한 갑옷과 방패지기가 배정되었다.

  골리앗이 온 몸에 갑옷을 두르고 앞장서기만 해도 적들이 겁을 먹을 거라는 추측. 그의 외모만 보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골리앗에게 싸움 기술을 더 익히라고 한 게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가장 뛰어난 전사와 일대 일로 붙자는 문구를 외우게 할 뿐이었다. 싸움을 걸어오면 어떻게 하냐는 골리앗의 질문에 그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는 지루하게 이스라엘 진영을 향해 똑같은 문구만 되풀이했다.

자네가 할 일은 그저 전사처럼 행동하는 거야. 그러면 적은 우리 앞에서 몸을 움츠릴 거야. 실제 싸움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구.

  방패지기 소년과 말동무도 하고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며 생각에 빠지는, 싸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골리앗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독자에게 전혀 다른 골리앗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큼 결말도 달랐으면 하고 바랐다. 내가 성경에서 읽은 단 몇 줄의 골리앗의 이미지가 아닌 책 속의 골리앗에 흡입되고 나니 다윗이란 인물은 새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리고 전사로 보이는 골리앗이 아닌 그냥 평범한 골리앗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랐다.

  하지만 이 책의 시작을 보면 골리앗이 마치 자기의 운명의 복선을 보여주듯 물맷돌을 집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리 색다른 골리앗의 이야기라도 그가 맞이할 운명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을 벗어나지 못했다. 블레셋의 왕은 그에게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고 이스라엘 진영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다윗이 다가온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해 있으며,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며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다윗이 다가와(어차피 골리앗도 싸움과는 거리가 멀어 무장하지 않은 다윗과 비등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물맷돌을 던진다. 그 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명중했고 그대로 쓰러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윗은 그의 머리를 벤다. 그 모습을 보고 블레셋 군인들은 도망간다는 설명으로 골리앗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오로지 골리앗의 시선으로 이어진 이야기였기 때문에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골리앗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성경처럼 그는 다윗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지만 이스라엘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환희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는지에 대한 의미가 부각되진 않는다. 평범한 군인이었던 골리앗은 전사처럼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블레셋 군인의 대표주자가 되었고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보지도 못하고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물론 저자로 인해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골리앗의 이야기이기에 이런 안타까움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어쩌면 우리도 많은 사람들을 함부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다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골리앗의 죽음은 안타깝다. 외모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평범한 삶을 영위했을지도 모를 골리앗. 나 또한 외모만 보고, 한 단면만 보고, 타인의 이야기만 듣고 사람을 판단해 버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내 속에 아무리 다양한 내가 있다고 하지만 타인을 향한 시선은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골리앗이 이 책 속의 인물이었단 사실을 끌어낼 수 없을지라도 하나의 사건으로 골리앗을 판단하지 않은 이 이야기. 타인을 대하는 내 모습에 많은 반성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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