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담가계 - 소박하고 서늘한 우리 옛글 다시 읽기
이상하 지음 / 현암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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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고전 소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국내 고전 소설이나 인문학에 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고전은 늘 고리타분하고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는 편견을 내내 가지고 있다, 18세기 활동했던 백탑파의 글을 읽고 조금 깨트린 게 전부다. 이후로 고전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지만 남다른 식견이 있는 건 아니고 거부감을 조금 덜어낸 정도다. 최근 소설 위주로 읽은 터라 나름 지쳐있어 오랜만에 만난 고전이라 이 책을 잘 읽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옛글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쉽게 찾아오리라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었는지 이 책의 묘미를 발견한 건 중반부에 들어섰을 때였다.

우리 마음도 지혜의 밝은 빛을 비추지 않으면 어두컴컴한 무지 속에 탐욕과 아집이 도둑처럼 숨어 살아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 내면은 보지 못하고 바깥세상만 보는 사람들은 마음을 헐떡이며 한사코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 불행해지고 만다. (26쪽)

  마치 나를 향해 하는 말인듯 정곡을 콕 찌르는 문장을 보면서 이 책에 실린 옛 사람들의 글이 내 마음에 밝은 지혜의 빛을 비춰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전은 담담하여 처음 읽으면 맛이 없다. 그러나 곱씹어 음미하면 음미할수록 더욱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냉담가계는 담담한 고전 읽기를 뜻하는 말이다.’란 이 책의 뜻처럼 처음부터 나에게 고전의 ‘맛’을 선사해 주는 듯하더니 이내 ‘담담함’이 심심함으로 다가왔다.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과감히 책장을 덮고 글이 내게 와 닿을 때 펼치다보니 읽기가 더뎌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조금이나마 더 곱씹을 수 있었지만 이런 담담함이 나에게도 깊은 맛으로 다가올 줄은 몰랐었다.

  담담히 읽어나가며 내 마음에 와 닿는 구절에 메모지를 붙이며 다시 한 번 음미하는 동안 내 추억을 꺼낼 수 있는 옛글을 만났다. 바로 소동파의「전적벽부」에 대한 설명으로 동파가「적벽부」를 읊을 때는 7월 기망(음력 16일)이라는 부연설명이 뒤따랐는데, 몇 년 전 정민 선생님과 정약용과 그의 제자 황상의 흔적을 찾는 강진 답사에 따라간 적이 있었다. 그때가 7월 16일이었는데(여건 상 음력까지 날짜를 맞추기는 힘들었었다.) 바다 위에 배를 띄워놓고 달구경을 했었다. 소동파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의 추억이 떠올라서 괜히 반가운 마음이 일어 그때부터 좀 더 마음을 열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총 다섯 개의 제목으로 묶인 글이 실려 있는데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글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다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연유든 간에 서간을 주고받으면서 나이를 떠나 지식으로 서로가 친구가 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주고받은 편지들이 모두 상대방을 배려하거나 깨우침을 주는 글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예의를 갖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요즘에는 볼 수 없는 지식인들의 모습이라 인상 깊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서간을 주고받는 것밖에 연락수단이 발달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말이든 글이든 쉽게 할 수 있고 순식간에 퍼트려지는 것을 보면 당시의 신중함과 배려, 포용이 빠진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드는 것이다.

  또한 책읽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채찍질도 많이 한 셈이었다. 책을 좋아하게 되면서 수많은 책을 쌓아두고 읽으면서도 제대로 읽을 때가 흔치 않고 책을 더 알아 가면 알수록 내 취향에 맞는 책만 읽기 마련이라 편중된 독서를 한 것도 사실이다. ‘즉 자득이란 사색하여 그 이치가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지 홀로만 아는 게 아니란 것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이치를 사색하다 보면 이치가 미처 마음에 와 닿기 전에 자기 생각으로 지레짐작하여 우격다짐으로 알아버린다.(241쪽)’란 문장을 보며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나의 직업이 학문을 닦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크게 이루겠다는 뜻도 없지만 단순한 독자더라도 한 권의 책을 만날 때마다 곱씹고 음미하면서 제대로 읽는 것이 책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겉핥기식 혹은 보여주기 위한 독서와 오독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이 책을 읽으면서 고전은 여전히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단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면 이런 글을 읽고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글은 말보다 정제되어야 한다. 말을 할 때는 가끔 실수하고 또 그 자리에서 고칠 수도 있지만 글로 기록되면 많은 사람에게 오래 전파될 수 있으므로 더욱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글이 말보다 더 가벼워졌다. (263쪽)

  이 책에 실린 글 이외에도 서로간의 대화가 오갔을 거라 상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정제되지 못하고 말보다 가벼운 글을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다. 나와 의견이 맞지 않더라도 자신을 낮추고 포용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 책 속의 글을 읽다보면 그렇게 행동하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지면서도 요즘 시대에는 대중 앞에 서는 사람들 중에 그런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만나기 힘들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글 속의 지식인들까지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바로 보는 식견과 자신에 대한 정확한 잣대를 대기 위해서는 정진하고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지식이든 삶의 방식이든 간에 옛 성현들을 통해 내가 받은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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