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삼바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284쪽)

 

  내가 태어난 나라에 살고 있어도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내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는 타국에서 그림자처럼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그곳에 머무를 수 있는 신분증이 없고 그 나라 국민도 아니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낱 공중에 떠 있는 먼지처럼 살아가야 한다면 그러한 삶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말리에서 온 삼바 시세를 보면 삶이라는 게, 살아간다는 게 무엇인지 깊은 회의감을 느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장남으로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도 엄청난 고생 끝에 프랑스로 건너와 난민이 되어야만 했던 삼바. 프랑스에서 발급해 준 임시 체류증으로 10년을 막노동을 하며 착실히 세금을 내며 살아왔지만 그런 그에게 돌아온 건 정식체류증의 허가도 아니고 더 이상 프랑스에 머물 수 없다는 통보였다. 스스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기에 정식 체류증 여부를 물으러 갔다 난데없이 체포되어 수감되는 삼바. 그곳에서 그는 자신이 프랑스 국민으로 절대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그간 보내왔던 10년의 세월이 프랑스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인물로 낙인 되는 것에 상실감을 느낀다.

 

  삼바가 프랑스에 머물 수 있는 희망을 갖으며 착실하게 상황을 받아들일 때마다 순수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다. 어수룩한 면은 있지만 나쁜 짓을 하지 않았으며 힘든 노동을 견뎌내고 고향으로 꼬박꼬박 송금하는 착한 청년이었다. 자신과는 달리 신분증도 있고 직장도 있는 외삼촌의 지하 아파트에서 얹혀살면서도 프랑스에서의 좀 더 나은 삶을 꿈꾸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수감되고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일단은 더 머무를 수 있게 되지만 그의 앞에 놓인 운명은 전보다 더 가혹해져만 갔다. 늘 경찰에게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고 자신의 이름을 감춘 채 타인의 신분증으로 겨우 하루 벌이를 해야만 하는 날들. 관광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프랑스의 화려함이 아닌 최하층의 민낯을 삼바로 인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삼바를 도와주었던 시민단체의 도움이 큰 힘이 될 거라 혼자 추측했다. 그로 인해 뻔한 결말일지라도 삼바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프랑스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며 희망에 부풀어 그의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그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여인을 사랑할 때도, 친구를 배신할까 조마조마 할 때도 삼바에게는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그려질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바의 운명은 가혹했다.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에서 머물며 나름 자리를 닦아 온 삼촌도 위험하게 만들고, 친구라 믿었던 이의 죽음에 얽히고, 타인의 신분증으로 살아가다 보니 진정한 자신도 잃어가는 것만 같았다. 점점 살아남기 위해 약아져 가는 삼바를 보는 일이 편하지 않았다. 마지막 보루인 고향으로라도 돌아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신만 바라보며 사는 어머니와 누이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삼촌이 늘 꿈꾸던 파란집이 그들에게 먼 이상향인 것처럼 온갖 차별이 존재하는 프랑스에서는 어떠한 희망도 가질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이름, 삶, 가졌던 희망들이 쓸모없는 장식처럼 누더기가 되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가시덤불로 뒤덮인 한계가 없는 평원 저 멀리, 그는 이제 하나의 미세한 검은 점에 불과했다. (328쪽)

 

  결국 그는 미세한 검은 점으로 남겨졌다. 삼바 시세가 아닌 타인의 이름을 가진 채 삶을 지속시키기로 다짐했다. 그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흘러가버린 삼바를 탓할 수도 없었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재 받지 못하는 일. 그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인생의 절반을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왈가왈부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그를 이해한다거나 희망을 가지라는 섣부른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지켜보는 것도 고통스럽고 이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혹은 지금도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것들을 얻기 위해 현재 내 곁에서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내가 이 모든 것을 버리고 타국으로 간다면 삼바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한 사람의 운명이 나라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러한 처사를 받는 다는 게 너무나 씁쓸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게 팍팍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느끼며 삼바의 삶이, 그가 살아내고 있는 익숙하지만 절대 그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없는 낯선 땅이 야속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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