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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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르 콩데'는 삶의 단조로움에서 예견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피난처였다. 내가 언젠가는 놓아둘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의 일부-가장 좋은 일부-가 그곳에 있으리라. (30쪽)

 

  나의 공간적 피난처를 굳이 꼽아 보라면 집 근처의 스타벅스다. 거리가 가장 가깝기도 하고 수많은 카페의 체인점 중에서 분위기나, 커피맛이 가장 입맛에 맞기도 해서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가장 좋은 내 일부를 놓을 만큼 편한 곳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현대적인 분위기의 카페에다 늘 사람이 북적이고, 철저히 개인주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르 콩데'에 나 자신의 가장 좋은 일부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말이 참 부러웠다. 나에겐 그런 공간이 없을뿐더러 나 자신의 가장 좋은 일부가 무엇인지 여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작품은『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은 게 전부다. 결코 녹록한 책이었노라고 말할 수 없지만 안개에 휩싸인 듯 몽롱한 분위기에 저자의 작품을 더 탐독해보고 싶다는 열망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면서 그의 작품이 국내에 더 출간이 되었고 그 작품들 가운데 제목이 가장 마음에 들어서 먼저 읽게 되었다. 뭔가 사색적이면서도 사연이 깃든 추억이 있을 것 같은 카페. 그 카페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었고 그 안에 펼쳐진 이야기 또한 궁금했다. 얇은 책이었지만 가볍게 페이지를 넘길 만큼 부담 없는 책은 아니었다. ‘르 콩데’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루키라 불리는 한 여인의 정체. 자클린 들랑크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으며 결혼도 했고 남편에게 결혼생활을 끝내고 싶다는 통보를 한 채 집을 나온 여인. 그 여인의 과거가 각각 다른 화자에 의해 드러나자 그 여인의 실체가 궁금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당겨 천천히 페이지를 넘겼다.

 

  문득 최근에 읽은 히라노 게이치로의『나란 무엇인가』에서 얘기한 여러 모습의 ‘나’, ‘분인’이 이 여인과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명의 화자로부터 드러나는 루키이자 자클린 들랑크라는 여인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옮긴이는 ‘단편적인 기억의 파편을 통해 과거를 정립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네 명의 화자의 목소리를 통해 그들이 보고 생각하는 바를 종합하여 전체적인 상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 작품의 큰 구도를 이룬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지닌다.’라고 말하고 있다.『어두운 상점들의 거리』가 전자의 구도를 취하고 있는 작품임을 경험했기에 각기 다른 화자로 드러나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다. ‘르 콩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매력적인 여인으로, 결혼을 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갔으며, 미성년자일 때 보호자 없이 밤거리를 헤매다 경찰서 조사를 받은 일, 다른 여인과 친구가 되었지만 무언가에 홀리듯 마약에도 손을 뻗은 일. 이 모든 게 한 여인의 이야기였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네 명의 화자의 이름도 섞이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도 섞여버리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파리의 수많은 지명들, 지리적인 위치들도 그런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런 요소들이 자칫 ‘기억의 파편’들일까봐 긴장을 하기도 했고 어떤 식으로든 그녀의 삶을 한 부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왕이면 긍정적인 모습으로 남길 바랐다. 그녀의 현재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지켜봤다 하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길 원했다. 그런데 그런 시간을 갖기도 전에 그녀는 네 명의 화자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 본 독자의 눈에서도 사라져 버렸다. 화자들과 얽혀있는 그녀의 이야기보다 앞으로 나아갈 그녀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던 그녀의 사라짐은 허망감을 주기도 했다. ‘르 콩데’에서 시작된 그녀와의 인연이 송두리째 날아간 기분까지 들었다. ‘오직 도망치는 순간에만 온전히 나 자신이었다.(103쪽)’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관계를 만든다는 것, 안정적이 된다는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 일상의 안온함 속에 마비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란 옮긴이의 말이 그녀의 사라짐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그녀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한 마디로 말하긴 힘들다. 나 자신도 한 마디로 정의하지 못하는데 타인을 정의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며 때론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기에 그녀의 행위를 지켜보면서,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혹시 놓쳐버린 게 있는 건 아닌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또렷하진 않지만 이룩한 것보다 놓쳐버린 게 더 많다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여전히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무언가가 나를 붙들고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침울한 기분이 들어 루키이자 자클린 들랑크의 삶이 내 안으로 침잠해 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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