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 강
미야모토 테루 지음, 허호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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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을 읽고 저자의 다른 작품도 무척 궁금해졌다. 두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반딧불 강』도 역시나 순식간에 읽어버릴 만큼 흡인력이 강했고 이 작가에 대해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많지 않았고 그나마 절판이라 중고로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 권씩 읽어 나갈 때마다 다음에 읽을 책을 구입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하는 일이 즐거우면서도 소설의 색깔이 달라짐을 알아감에 따라 점점 느낌을 남기는 게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실린흙탕물 강」은 다자이 오사무 상을반딧불 강」은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이다. 일 년 간격으로 쓴 작품들이 이런 상을 받을 정도니 저자의 저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작가가 된 것도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읽은 단편이 너무 재미있어서라고 하니 그런 계기만큼이나 저자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기 좋아하는 것과 직접 쓰는 건 엄연한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기에 독자에서 작가로 신분이 전환된 저자의 글을 더 주의 깊게 읽게 되는 지도 몰랐다.

  두 편의 단편 모두 강이 배경인 만큼 강과 함께 드러나는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 좀 더 강렬했던 건흙탕물 강」이었다.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는 여덟 살 노부오의 눈으로 보는 어른들의 세계와 집 앞에 흐르고 있는 강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늘 식당에 와서 밥을 먹던 짐수레를 몰던 아저씨의 죽음으로 포문을 열고 이어 배에서 생활하는 노부오 또래의 소년이 등장한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배 위에서 살아가는 소년과 함께 흙탕물 강에서 귀신잉어를 보기도 하고 소년의 누나에게 호기심을 품기도 하며 몸이 불편한 소년의 엄마가 무슨 일을 하며 남매를 키우는지 알기도 한다. 식당을 하는 평범한 자신의 가족을 부러워하는 소년을 보며 노부오는 배 위의 생활과 앞으로 그 가족에게 닥칠 앞날에 대해 짐작할 수도 없지만 자신의 가족 또한 엄마의 건강과 아빠의 사업을 위해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였다.


  남매의 엄마가 몸을 팔아서 생활을 이어가고, 제대로 된 집도 없이 배 위에서 강을 따라 이리저리로 이동하며 살아가며, 전쟁터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린 짐수레를 몰던 아저씨의 죽음 등이 혼탁한 강물처럼 내 마음까지 어쩔 줄 모르게 만들었다. 그들이 본 귀신잉어처럼 마치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강 위에서 생활하는 소년의 가족과 노부오의 추억도 순식간에 흙탕물 속으로 잠식해 버리는 것 같았다.

  「반딧불 강」은 열네 살 다쓰오의 성장기를 다룬 소설이다. 소꿉친구 히데코를 좋아하기도 하고, 히데코를 좋아하는 동성친구와 미묘한 감정을 나누다가도 그 친구의 죽음을 목도하고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사월에 큰 눈이 내리면 엄청난 반딧불을 볼 수 있다는 긴조 할아버지의 말 때문에 눈이 오는 날 다쓰오는 반딧불을 볼 요량으로 흥분하곤 하는 천진난만한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 가운데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가 쓰러지고 고등학교 진학 여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꿋꿋하게 대처하는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반딧불을 향해 가는 모습에서 잔잔함을 느꼈다. 히데코와 함께 가기 위해 엄마를 끌어들이는 어설픔 속에서도 긴조 할아버지가 말했던 반딧불의 향연을 가늠조차 할 수 없기에 설레는 맘으로 함께 그들을 따라갔는지도 몰랐다. 반딧불을 보는 광경은 이 소설의 백미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움 그 자체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환상의 빛』단편이 묘사가 너무 뛰어나서 다른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무척 궁금했었다.「반딧불 강」『환상의 빛』만큼의 묘사는 아니지만 잔잔함과 함께 저자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되어 주었다. 단 두 편의 작품을 읽은 터라 뭐라 똑 부러지게 단정 지을 수 없는 무언가가 저자의 다른 작품도 계속 찾아보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문체의 막힘없음이 점점 더 저자의 매력 속으로 빠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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