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심장부에서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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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존 쿳시의 작품은『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를 읽은 게 전부다. 그 한 권의 책으로 존 쿳시라는 작가는 무척 독특한 작가로 인식되었다. 두 이야기를 한꺼번에 펼쳐놓는 구성에 다른 작품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두 번째로 이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은『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와는 또 다른 구성의 이야기라 저자의 작품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야기가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독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어 다른 작품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아마 이 작품을 읽고『추락』을 구매한 것 같은데 아직도 책장에 묵히고 있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작가인 것 같다.

  소설 속 배경과 주인공 마그다를 보고 있으면 인간이 얼마나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또 얼마나 빠르게 순응해 가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했다. 남아프리카의 황량한 농가에서 아버지와 흑인 하인들과 살아가고 있지만 그녀는 정작 주인으로써의 우월감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흑인 하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이 그녀에게 주어졌고 그녀는 부당한 처우를 받아도 자신의 권리를 되찾기보다 그냥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지만 아버지는 딸이라기보다 하인 취급하며 그녀에게 상처만 주고 있었고 그렇게 서로에게 어긋난 관계가 집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결혼을 해서 분가를 했다면 적어도 마그다 그녀의 삶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그 고통스러운 집에서 그 고통을 스스로 자초하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에게 벌어진 일들, 그녀가 행한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폭력성은 늘 잠재해 있지만 언제든지 순식간에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행동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정죄 받지 못한 채 혼자 남겨졌다고 해서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그다도 하인 헨드릭에게 겁탈도 당하고 그들 부부에게 모욕을 당했으면서도 어떠한 조취도 취할 수 없다. 그녀가 아버지를 죽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기댈 사람이라곤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잘못을 저지른 건 아버지였다. 헨드릭의 아내를 침대로 끌어들였고 딸인 마그다를 딸 취급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총으로 쏜 사람이 마그다가 되었고 그 비극은 현실과 환상의 몽롱한 그녀의 의식 가운데서 밝혀졌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이 모든 이야기를 읽어내는데 결코 녹록했던 건 아니다. 친절하게 독자에게 안내해주는 것이 아니라 잠시라도 딴생각을 할라치면 금세 딴 길로 새버리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간추려 본 줄거리만 보아도 충분히 우울한데도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이다. 끄트머리에 가서는 마그다가 현실 속에 살고 있는지 아니면 환상속의 이야기를 현실로 끌어당기고 있는지 구분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비극적이고 쓸쓸했다. 혼자서 고립된 공간에서 늙어가고 있었고 저렇게 있다간 정신을 놓아버리진 않을까 걱정까지 될 정도였다.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데 마그다는 혼자서 감당하면서 우뚝 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삶의 끈질긴 인연과 동시에 착잡하기만 했다.

  꾹꾹 눌러온 인간 본연의 어두운 면이 뻥하고 폭발한 듯한 느낌이 든다. 무언가에 억눌려오다 모든 것을 폭발시켰지만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면서 과연 이 삶을 지속시켜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더불어 한 번뿐인 인생이라고 하는, 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허리를 곧추 세우게 만들기도 했다. 똑바로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과연 나는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지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나온 과정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행보가 더 중요함에도 자꾸 뒤돌아보는 건 이미 지나온 내 삶에 아쉬움이 많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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