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9 - 처음 4년간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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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다. ‘옮긴이의 말’에서 현재는 로라의 혈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1867년에 태어나 90년의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그녀의 혈통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니. 옮긴이는 이 책으로 인해 사람들에 마음에 따뜻한 불을 켜 줄 것이며 로라도 ‘우리의 작품은 더 오래 산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로라의 격정적인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그 이야기를 후손들이 직접 입에서 입으로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혈통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버젓이 글로 남겨져 있음에도 그녀를, 그녀의 가족을, 그녀의 삶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괜히 전전긍긍 해지는 것이다.

  ‘처음 4년간’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작품은『초원의 집』시리즈의 속편이며 로라의 유품 서류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로라와 앨먼조가 막 결혼한 직후부터 4년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남편 앨먼조가 세상을 떠나자 원고를 손질하여 출판할 의욕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래서 문장이 거칠지만 원고 그대로 출판하기로 했단다.『초원의 집』시리즈를 읽다 이 작품을 읽으면 문장이 다름을 느낀다. 온전히 로라의 시선에서 바라본 앨먼조와의 결혼생활, 그리고 딸 로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너무나 담담하게 어려웠던 모든 일을 써내려가고 있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질 않을 정도다.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앨먼조와 로라의 출발이 순조롭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앨먼조는 신혼집을 지으면서 빚을 졌고 농사가 풍년이 되어야 그럭저럭 유지해 갈 수 있는데 자꾸 실패를 했다. 자연의 이치에 굴복당하고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닥쳤다. 그 와중에 딸 로즈가 태어나 기쁨이 되기도 했지만 농지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건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로즈의 남동생이 태어나지만 3주 만에 죽고 만다. 로라는 아이의 죽음을 너무나 담담하고 간략하게 이야기한다. 얼마나 절제되어 있었던지 당시의 로라의 마음을 전혀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거기다 처음 4년 동안에 일어난 일들은 모두 힘들어 보였다. 농사가 잘 되지 않았고 앨먼조는 아파서 후유증으로 몸을 예전처럼 잘 움직일 수 없었고 책의 마지막에는 집에 불까지 난다. 그렇게 로라의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니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8번째 이야기 ‘눈 부시게 행복한 시절’에서 그대로 기억하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들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로라의 가족이 더없이 화목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역경을 이겨냈으며 그런 와중에도 늘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 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고 신앙심이 깊었다.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삶을 살라고 했다면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부터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역경이 닥치면 로라가 선생님을 하던 시절에 잠시 하숙을 했던 그 집처럼 늘 화목하지 못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로라와 그의 가족, 당시의 사람들이 살아낸 그 시절의 이야기를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작품이 아닌 현실로 돌아와 전해진 소식들은 안타까웠다. 로라와 앨먼조 사이에 아이는 로즈 뿐이었고 로즈도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만 자신의 남동생처럼 태어나자마자 죽고 만다. 그리고 로라의 자매들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아이를 남기지 않았다. 언니 메리는 독신으로 살았고 캐리와 그레이스도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다고 한다. 이 소식들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로라의 후손들이 어딘가에 잘 살아가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시리즈를 읽는 내내 로라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종종 궁금해 했는데 막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되니 가슴이 먹먹해진 것이다. 이렇게 작품 속에 생생하게 녹아들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거라 안심하면서도 자꾸만 아쉬움이 남는 건 긴 이야기만큼이나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헤어지기 싫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다시 펼치면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으나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옮긴이의 말마따나 로라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50대 중반에 읽어보면 그때는 덜 아쉬울까? 이 먹먹한 마음이 수그러들면 꼭 다시 한 번 더 읽어보고 싶다. 긴 이야기였음에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을 만큼 힘든 시절을 잘 이겨내고 행복을 더 크게 보며 살아 온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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