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남편의 코고는 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54분. 평소에 코를 골지 않는 남편인데 연속 4일 야근을 하더니 몹시 피곤했나보다. 코 골지 말라고 남편의 코를 살짝 쥐어 잡고 아이가 깰까 슬그머니 안방을 빠져나왔다. 이 시간에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는 리뷰를 쓰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다. 그것도 아이가 깨지 않을 때까지 늘 불안한 마음을 한켠에 갖고 말이다.

  그럼에도 잠시나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맙게 느껴진다. 주말 아침이라고 해서 나에게 특별한 날이 되지 않듯이 외출을 한다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집 근처를 나가는 일도 거의 없다. 남편과 아이와 함께 집에 좀 더 오래 있으며 그마저도 잘 보지 않는, 평일에는 볼 수 없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좀 더 볼 수 있다는 게 특별하다면 특별할까? 그래서인지 이 책 제목을 보니 약간의 대리만족이 되었다. 내가 만약 책 속의 주인공들처럼 삼십대 중반에 애인도 남편도 없는 상황이라면 그녀들처럼 주말을 즐기지 못했을 거다. 결혼에 대한 압박감,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하루하루 시들어 갔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상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그녀들의 고민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다.

  경품으로 당첨된 자동차 때문에 시골로 이사한 하야카와는 번역일을 하고 있다. 그나마 시골로 내려오자 일이 더 줄어 버렸지만 시골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자 과외도 하고 기모노 입는 방법에 대한 무료 강연도 하면서 나름 바쁘게 보내고 있다. 그런 하야카와가 있는 시골로 종종 놀러오는 두 친구가 있다. 출판사 경리부에서 일하고 있는 마유미, 여행이 좋아 여행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 여행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세스코다. 시골에서 맛 볼 수 없는 음식이나 간단한 선물을 사서 하야카와에게 와 하룻밤을 묵고 가면서 점점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에 매료되어 간다.

  마유미와 세스코는 따로 오기도 하고 함께 오기도 하지만 늘 한결같이 반갑고 즐거운 친구들이다. 오래된, 친한 친구들이 그렇듯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떤 얘기든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사이다. 다만 우리네 정서와 좀 달라 깍듯이 예를 갖춘다거나 상대방에게 너무 세세히 신경 쓰는 것들은 낯설기도 했고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있어 가장 부러웠던 건 함께 자연을 느끼는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하야카와에게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숲을 걷는다는 게 좋았고, 마유미와 세스코는 잠시 복잡한 도시를 떠나 시골에 있는 친구도 보고 자연을 느끼며 재충전을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인간관계로 인해 점점 지쳐가는 세스코에게는 이런 시간이 위로와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도 도시의 번잡함과 치열함을 경험한 날들이 있었다.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는 있었지만 도무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내가 제대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지 생각할 틈도 없이 바빴다. 주말에도 자주 쉬지 못했고 일에 모든 것을 맞추다보니 개인적인 여유를 생각할 틈이 거의 없었다. 나에게 하야카와 같은 친구가 있었다고 해도 부족한 잠을 채우느라 주말에 찾아갈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말에라도 시골에 있는 친구를 찾아가 함께 숲을 걷고 자연을 느끼고, 내가 하지 못한 것들을 배우고 온다면 분명 삶의 활력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녀들이 일상을 모두 잊고 도피하듯이 숲을 걷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소홀히 했다면 공감을 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갖고 있는 고민과 어려움들을 숲을 걸으면서 친구에게 듣거나 느꼈던 일들을 되새기면서 현실에 충실하려는 모습이 피부에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며 훌쩍 숲으로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도 오랜 도피의 발단이 아닌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한 시도라고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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