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
정혜윤 지음 / 난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책이란 시기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낀 읽기였다. 이 책을 처음 꺼내든 건 약 3년 전이었다.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진 곳에서 드러누워 이 책을 읽었음에도 오로지 책에만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기엔 그 당시의 나는 잡념이 많았다. 그렇게 덮은 지 3년이 지났고 다시 펼쳐 들었을 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읽었다.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 이 책 좋다고, 한 번 읽어보라 할 정도로 책 속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에 푹 빠져 버렸다.

우린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을, 나아가 그 다양성은 존재들이 저마다의 삶의 환경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려 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들려주었기 때문에 나를 사로잡았다. (191쪽)

  얼핏 책 제목만 본다면 저자가 어딘가를 여행하고 돌아와 쓴 이야기로 보여 질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그럴 거라 생각하고 펼쳤고 여행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 공간을 이동한 여행기라기보다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그 속에 그 사람들이 살아온 인생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랐던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다양성 속에 이미 살고 있음’에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없었고 찾으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상상할 수 없는 다양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진딧물을 연구하는 박사님의 이야기였다. 그 작은 생명체를 연구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 세계가 무한하고 타인이 알아주지 않아도 매력을 느껴 묵묵히 그 길을 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대단했다. 우리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며 살아가고 있었던가. 조금만 알아주지 않아도 이내 서운해 하고 그 감정을 다 토로하는 내가 그 작은 생명체 앞에서 부끄러웠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절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는 딱 한 경우뿐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 자리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 경우, 안주할 경우, (중략) 여행지에서 선택을 한다는 것은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 선택과 포기 ‘뒤’에, 선택과 포기를 ‘통해’서만 우리는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141쪽)

  이주노동자로 우리나라에서 살아 온 청년 소모뚜의 이야기도 있다. 포기를 더 많이 선택해야 했고 그냥 나와 똑같은 사람으로 봐주는 것이 인권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포기하면서도 자신의 권리와 존재를 잊지 않았던 청년이었다. 이익을 위해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지 안타까웠지만 내 안에도 그런 이기적인 존재가 도사리고 있으며 언제든지 뛰쳐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소모뚜의 그런 선택과 포기, 용기가 대단하게 보였다. 오랜 시간을 타국에서 살아가면서 포기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끈기와 인내 속에서 ‘모든 것을 다 갖지 못한다고 슬퍼’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인터뷰집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다양한 여행을 했다. 저자를 통해 저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서 한 여행을 나 또한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연결고리가 없었다면 타인의 인생이 하나의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지도 모른다. 어딘가로 떠나야 여행이고, 그곳에서 일상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껴야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와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이 삶이 충분한 여행이 될 수 있으며 그 여행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좀 더 충실한 여행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언제 또 이 모습으로 이 삶을 살아볼 것인가? 그 질문 속에서 우리 인생은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기회다.(192쪽)’라고 했듯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내 삶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것. 그것이 여행자의 첫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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