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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주는 아직 멀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수짱의 연애』를 읽고 나면 이 책이 궁금해진다. 바로 수짱이 오랜만에 연애 감정을 느끼는 쓰치다의 속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과연 수짱과 쓰치다는 연애를 하게 될까 말까 궁금하던 터라『수짱의 연애』를 읽고 바로 펼쳤는데 역시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쓰치다가 밀당을 했다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 수짱과 쓰치다의 연애사를 바로 드러내기보다 두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보여주려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간 수짱의 내면과 고민들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쓰치다의 고민과 속내를 고스란히 볼 수 있었다. 평범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남자 쓰치다. 어떤 고민들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가 낱낱이 들어 있다.
지금도 책을 좋아하지만 서점에 가면 내가 읽지 않은 수많은 책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나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지방에서는 한가하게 책을 들여다보며 고르는 사람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책을 구입하러 온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했고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찾는 책 있냐는 질문이 들려올 정도로 작은 서점들 뿐이었다. 그러다 서울의 대형 서점에 가자 그야말로 신기루를 만난 것 같았다.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책들이 즐비했고 꽤 괜찮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는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간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얼마나 허황된 생각들을 품고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화였다.
서점 이야기를 한 건 쓰치다 때문이다. 쓰치다 역시 책을 좋아하고 서점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소개팅을 나갔다가 책 이야기가 통한다 싶으면 상대방을 마음에 담는 순수한 청년이다. 그런 쓰치다는 책 이야기도 하고 자신의 연애, 편찮으신 큰 아버지 이야기, 직장 동료들, 손님들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쓰치다의 섬세한 속내가 드러나는데 월급날이면 서점이 붐비는 걸 보고 감동을 했다는 부분을 보며 나도 멈칫했다. 책에 한참 빠져들 때의 나는 책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책을 소유물로 그리고 책 자체를 순수하게 바라보기보다 빨리 읽고 리뷰를 남기며 읽은 책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더 생각하고 있다. 묵직하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들은 책장 높은 곳에 묵혀 둔 채 현재 내 욕망을 풀어줄 책들만 줄기차게 찾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좋아하는 마음에 대한 반성으로 쓰치다의 이야기를 채울 생각은 아니다. 오히려 쓰치다를 통해서 책을 처음 좋아하게 된 마음, 20대 중후반부터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지금의 내 모습을 되새겨보자 뭔가 허무한 세월을 살아온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서점에 전시할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책 리스트도 말해주고(무라카미 하루키의『먼 북소리』는 완전 동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건 아닌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한다. 한때 나도 훅 불면 우주의 먼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떨던 때가 있었다. 그런 고민에 대한 결과가 드러난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걸 보면 꽤 질긴 먼지라는 게 증면된 셈일까?(^^)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다 보면 인생에 대해서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고민들이어서 그런지 대입이 잘 되는 것도 있고 꼭 인생을 이런 고민으로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지기도 하는 묘한 생각들이다. 지금까지 정한대로 살아지지 않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앞으로 펼쳐질 삶에도 어떤 날들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타인의 생각에 그대로 묻어가기보다 타인의 생각에 비추어 나의 모습은 어떤지, 내가 가야 할 방향과 인생관은 무엇인지 좀 더 명확하게 자세를 잡는 것. 어쩜 그것이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관통하는 중심이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