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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고 동맹 ㅣ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1
미타 마사히로 지음, 심정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분교에 다니던 나에게 중학교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졸업 동기가 8명에 불과했던 초등학교와 달리 무려 반이 두 개나 되었고 1학년은 80명이었다. 그렇게 많은 또래 아이들을 만나본 것도 처음이었고 2학년 3학년 선배들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철없던 나는 단박에 짝사랑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자주 짝사랑 하는 사람이 바뀌었고 꼭꼭 숨기거나 너무 티 나게 드러내거나 극과 극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기억나는 아이가 한명 있었다. 나와 장난치다 코피를 터트렸던 아이, 내가 짝사랑을 하게 되었는데 바로 전학 가버렸던 아이. 그런 아이를 6년 뒤 19살의 끄트머리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나는 또 바보 같이 짝사랑에 빠져버렸다.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그 아이와 잘 된 다거나 뭐 그런 일이 있어야 하는데 내 짝사랑은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다. 그 아이 생일에 맞춰 고백하기 며칠 전, 다른 여자아이에게 고백을 받고 사귀기 시작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단박에 그 아이와 연락을 단절하고 절망에 빠져버렸다. 몇 개월이 지나서 나에게도 남자친구가 생겼고 그 아이는 무려 8년의 연애를 했지만 결국 헤어졌다. 그 아이의 이별 소식이 들렸을 땐 나에게 남자친구가 없었다. 서로 뜻이 맞았다면 잘 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더 이상 풋풋한 20살의 내가 아니었기에 더 이상 그 아이가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틈틈이 연락을 하며 지냈고 서로의 결혼 소식을 전하며 출산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됐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지난 이야기를 들춰낸 것일까? 아마도 이 책 속의 사춘기 아이들의 연애와 우정 이야기를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의 나에게 혼자만의 일방통행이 아닌 소통할 수 있는 연애였다면. 결과가 어찌 되었던 간에 숨통이 트였을 것 같다. 나를 잘 몰라도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친구가 곁에 있다면. 뜬금없이 내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친구가 있었더라면 당시의 나도 덜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료이치 앞에 나타난 데쓰야. 야구부인 데쓰야는 료이치에게 다짜고짜 자신의 시합을 비디오로 찍어 달라고 한다. 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 료이치는 그의 부탁을 들어주고 급기야 암 투병중인 나오미라는 여자아이까지 만나게 된다. 이렇게 갑자기, 묘하게 친구가 된 세 아이들의 이야기는 담담하면서도 맑게 그려지고 있었다. 암 투병중인 나오미에 대한 연민을 차치하고라도 이러한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춘기의 순수한 절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들의 연애와 우정에 관해서만 그려냈다면 지금껏 종종 만나온 청춘소설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픈 이가 등장하는 소설도 만나봤지만 죽음에 대해서 이렇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인지 딱 고만한 사춘기 아이들 같으면서도 때론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 애 늙은이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죽음이라는 것을 목도하고 있고 어쩌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기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상대방에 가 닿지 않더라도 그 행위만으로도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적이 내게도 있었을까? 자연스레 마음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의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조건 없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좋아할 수 있는 마음.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친한 친구가 좋아하더라도 그런 마음이 드러날 수 있고 변화시킬 수 있는 과정에서 도리어 내가 힘을 얻었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쩜 행운이기도 하면서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료이치는 데쓰야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었다. 나오미 또한 데쓰야를 통해 료이치를 알게 되고 데쓰야는 료이치를 통해 나오미를 또 새롭게 보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만남이 어떠한 결과를 낳던지 간에 이렇게 손을 내밀어 친구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요즘은 친구 만들기가 얼마나 힘들던가. 기존의 친구도 지키기 힘든 요즘에 내가 손을 내민다고 아무렇지 않게 덥석 손을 잡아 줄 타인. 어쩌면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친구를 갈망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