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화 구두 세트 - 전4권
박윤영 지음 / 애니북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늘 글자가 빽빽한 소설책을 읽다 보면 가끔은 눈의 피로가 덜한 만화책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느긋한 금요일 저녁이나 긴 연휴의 첫 날 그런 책이 당긴다. 달달한 케이트와 커피 한 잔을 옆에 놓고 배 깔고 누워 만화책을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환상적인 조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책도 그럴 때 꺼냈었다. 직장을 다니던 금요일 저녁 텅 빈 사무실에서 느긋하게 조금만 읽다 가자며 꺼냈다가 1권을 순식간에 읽고 2~4권을 가방에 꾸역꾸역 넣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섭렵해 버렸다.

 

  그때는 연애를 하기 전이라 오글거리는 대화와 장면에 몸서리를 치면서도 나도 이럴 때가 있었나 싶어 동시에 함숨을 쉬기도 했다. 평범한 직장 여성 신지후.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직장 선배 오대리. 어쩌면 거리감이 먼 인물이 아닌 직장 내 상사를 좋아한다는 설정에서 좀 더 편하게 다가왔었다. 하지만 직장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또 공감하는 사실이, 직장엔 오대리 같은 남자가 흔하지 않다는 것, 아니 아예 그런 남자가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들이 겪는 마음의 변화에 마음을 빼앗길 수 없는 것은 누구나 한번쯤 기대하게 되는 사랑 때문일 것이다.

 

  사랑을 하면 상대방에게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오해도 잘하고 착각도 잘하고 혼자서 울고 웃는 날이 많아진다. 짝사랑이든 마주보는 사랑이든 타인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것에 연애만한 것도 없다. 사랑이 시작 될락말락 할 때의 미칠 듯한 설렘. 마음이 받아들여지고 서로가 통했을 때의 기쁨.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고 때론 다른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 이런 감정의 변화를 느꼈던 적이 언제던가. 그 감정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한번쯤 경험한 적이 있는 감정이기에 두 주인공의 희비에 나 또한 그대로 따라갔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가 만화의 주인공인 듯 한껏 빙의되어 마음이 설fp다가도 오글거림을 참지 못하고 내뱉었던 한마디는 ‘이런 게 현실에 어디 있어!’였다. 서른이 넘어서 읽게 된 만화여서 그런지 이미 세상을 다 안다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가 괜히 고리타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 속에서 이런 사랑이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내가 경험하지 못하면 부정해버리는 아이러니. 한껏 빠져들었음에도 결국은 현재를 인식하며 빠져 나와서인지 만화의 끝이 조금은 씁쓸했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더라고 결국 해피엔딩이라면 그 과정에서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텐데. 왠지 끝이 불안할 것 같아 내가 마음을 졸이다 긴장감이 풀려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사랑을 꿈꾸며 이런 사랑을 해보려는 용기라도 품었을까? 명확한 대답을 할 순 없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알 것 같다. 아프더라도 사랑을 하는 게 더 행복하고 나를 발견하는 게 더 쉽다는 사실. 아픈 게 두려워 사랑을 피할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사랑하지 않은 날보다 사랑하며 사는 날이 더 행복했다며 이제야 정의를 내려 본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난 지금은 왜 그런 행복감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일까? 사랑이 멈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럴 때일수록 더 열심히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침체. 남편과 데이트라도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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