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에서의 저자의 능글맞음을 기억한다. 판탈레온 대위를 앞세운 진지한 능글맞에 반해 저자의 모든 작품을 섭렵하고 싶을 정도였다. 이후에『나쁜 소녀의 짓궂음』을 읽으며 전작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꼈고『새엄마 찬양』을 통해 에로티즘의 끝을 본 것 같았다. 이미 우리 사회에 공공연하게 드러나 있지만 감추고 싶어 하는 성(性)에 대해 이렇게 노골적이고 저돌적인 작품을 만난적이 있었을까? 직설적이면서도 그림과 함께 엮어가는 몽롱한 이야기는 이 소설의 주인공 새엄마 루크레시아, 의붓아들 알폰소, 남편 리고베르토와 교묘하게 얽혀 들어간다. 따로 장(章)을 마련해 그림 이야기, 그림에 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배치는 소설속의 인물들과 흡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 같았다.

 

  리고베르토 씨는 새 아내 루크레사의 육체와 성적인 매력에 반해 결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흔을 맞은 그녀는 성적인 매력을 전혀 잃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매일 밤 쾌락을 즐기며 새로운 결혼생활에 만족감을 얻는다. 혹시나 그들 사이를 불편하게 하진 않을까 걱정하게 되는 알폰소도 새엄마를 찬양할 정도로 좋아하며 평온한 관계를 맺어간다. 하지만 그러한 일상이 진행될수록 안정되는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꾹꾹 누르며 뻥하고 터질 기회를 엿보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단지 성만을 다루는 작품은 그다지 매력이 없다. 그런 작품은 활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지 성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인생을 오로지 성으로만 다루는 작품은 너무 인위적이다. (238쪽, 해설)

 

  저자는 성만 다루고 있는 작품의 인위적인 면을 지적했듯이 새엄마와 사춘기 의붓아들의 근친상간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특유의 발랄함과 능글맞음,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아한 분위기를 잘 끌어내고 있었다. 알폰소의 무지한 순수함이 새엄마의 긴장감을 무너뜨리게 하고 결국에는 그것이 계획된 영악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알폰소를 미워할 수도, 새엄마를 탓할 수도 없는 교묘한 분위기가 되어 버린다. 근친상간은 어떤 식으로든 용납할 수 없기에 그들이 새롭게 꾸렸던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결국 깨진다. 이 모든 것이 알폰소의 계획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허무함이 밀려오기 보단 저자가 여기저기 배치해 놓은 그림에 관한 전설, 그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현실이 얽혀 그냥 수긍해 버리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인 경계 허물기’의 예를 보여주듯 소설 속의 인물들과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내용도 완전히 섞어 버리는 허물기를 보여주는 듯했다. 어떤 것이 전설이고, 어떤 것이 허구인지를 구별하지 못할 만큼 몽롱한 분위기 속에서 성에 대한 다양한 면이 부각되었다. 성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속내를 들여다보듯 거부감이 들지 않으면서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성에 대해 낱낱이 까발리는 듯했고 밝다 못해 아름답게 미화되는 저자 특유의 문체와 구성 속에 빨려 들어갔다.

 

아이의 수준에서든, 어른들의 빈약한 환상의 수준에서든,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상징이자 도구로 작용한다. (246쪽)

 

  ‘위선의 가면을 벗기는’ 과정을 저자는 이 작품을 통해 꼼꼼히 해 나갔다. 그래서 불편한 내용을 읽으면서도 어둠으로 침잠하지 않았고 내가 가진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을 깨기도 했다. 성을 드러내는 것도 감추는 것도 어느 쪽이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이 작품을 통해 그간 우리가 숨기고 타락시켰던 성이 무조건 나쁘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로이 심어 주었다. 드러내고 숨기기 전에 올바로 전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 온전히 쾌락과 추구만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말자는 조금은 진부한 교훈(?)을 이끌어내며 소란스럽고 장황하고 어리둥절했던 이 소설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