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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을 쫓는 모험 (상)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신태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명 '쥐' 시리즈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댄스 댄스 댄스』까지 읽는 동안 이 작품이 가장 재미있었고 완성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인의 말처럼 이 작품을 만나기 위해 마치 앞서 두 작품을 거쳐 온 것만 같았다. 어김없이 주인공 '나'가 등장했고, 한통의 편지로 시작된 양 사나이를 쫓는 모험은 기묘하고 신비하면서도 하루키답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루키 첫 작품으로 『상실의 시대』를 택해 두고두고 후회한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하루키 작품을 전혀 모르던 20대 초반의 어린 나에겐 적응하기 힘든 작품이었고 이어 『1Q84』를 읽고 나서도 하루키 작가에 대한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특이한 소설이고 독특한 소재다는 생각만 들뿐 하루키 문학 전반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초기작을 읽고 보니 하루키 문학의 흐름과 변화를 이제야 조금이나마 감지하게 된 것 같다.
그 바탕에는 이 작품이 있었다. 빅브라더와 양 사나이가 닮아있어서인지 몰라도 이상하게 읽는 내내 『1Q84』가 생각났다. 당시 그 소설을 읽을 때 '어떻게 이런 소재를 생각해 낼까?'란 의문만 들었었는데 이 작품을 읽으니 좀 더 풍부하고 정교한 소설이 『1Q84』란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이 발단이 되어 『1Q84』가 정점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초기작부터 읽어나갔다면 『1Q84』를 좀 더 감탄하며 읽었을 거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친구가 보내온 편지 속의 사진으로 인해 양을 찾는 모험이 시작되었지만 과연 그 양이 진짜 존재하는지 과연 찾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지 전혀 예감할 수 없었다. 너무 막막해 양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나'의 태도도 서두르기보다 결과는 신경 쓰지 않은 채 행동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을 찾아 떠나면서도 과연 이 모든 상황이 '나'에게 유리한 상황을 열어줄지 의문을 떨칠 수 없었다.
서서히 스며드는, 양을 찾아야겠다는 목적의식은 소설을 읽는 집중도를 놓여갔고 친구 '쥐', 즉 네즈미에 관한 복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양 사나이를 만나고 양 사나이에 관한 비밀이 모두 풀렸을 때 네즈미의 죽음을 예감한 것처럼 이 모험은 단순한 양 한 마리를 찾는 모험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을 지배하고 삶을 바꿔버리는 양 사나이. 『1Q84』의 빅브라더와 무척 닮아 있었고 다른 사람의 삶은 물론 은밀한 조직의 행보를 차단하기 위해 네즈미가 자신의 목숨과 바꿔버린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조금 지난한 부분도 있었지만 비밀이 풀려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고 기묘한 양 사나이의 등장은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양 사나이에 여러 가지를 대입해 보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병폐를 볼 수 있었고, 어쩌면 지금도 알게 모르게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욕망들의 꿈틀거림을 제대로 목도할 수 있었다. 네즈미의 선택이 불가피 했지만 그가 머물러 있던 깊은 산중의 쓸쓸한 집이 내내 잊히지 않는다. 내 마음 속에 그런 쓸쓸한 집을 가지고 있으면서, 양 사나이가 언제라도 들어와 맘껏 휘젓게 만들고 있으면서도, 그 집을 여전히 해체하지 못하는 내가 야속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