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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래빗 시리즈 04 : 제미마 퍼들덕 이야기 ㅣ 베아트릭스 포터 베스트 콜렉션 4
베아트릭스 포터 글.그림, 김동근 옮김 / 소와다리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모르는 사람을 따라 가면 큰일 나요.(61쪽)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아 학교 가는 길이나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낯선 사람의 자동차를 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학교와 집이 워낙 멀기도 했고 버스도 자주 있지 않아서 걷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걸어가는 누군가를 지나치지 못하는 게 당시의 미덕이었는데 요즘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낯선 사람은 경계해야 하는, 혹은 부모의 친구라고 해도 의심을 해야 하는 무서운 세상이 된 것이다. 꼭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낯선 이를 따라가면 큰 일 난다는 일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오리 제미마 퍼들덕의 이야기다.
주인 아주머니가 알을 품지 못하게 하자 화가 난 제미마는 농장 구석에 알을 낳지만 낳는 족족 빼앗기고 만다. 그래서 안전한 숲 속에 알을 낳기로 하고 화창한 봄 날 훨훨 날아간다. 숲 속에 도착에 알을 낳을 곳을 찾던 제미마는 마침 북실북실 꼬리가 달린 신사를 만나게 된다. 그 신사의 안내로 여름 별장이라는 오두막으로 안내된다. 아늑한 곳이라고 안내받은 곳에는 닭, 꿩, 오리 깃털로 가득한 방이었다. 많은 깃털에 놀라긴 했지만 너무 포근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제미마는 그곳에 알을 낳고 둥지를 지켜주겠다는 신사의 약속에 안심을 한다.
제미마는 매일 오후 둥지로 날아와 알을 낳았다. 교활한 신사는 그 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세어보기도 하면서 제미마를 위하는 척 연기 한다. 그러다 알을 품기 위해 양식이 필요하다던 제미마에게 몸보신을 시켜주겠다며 오리구이에 들어갈 양념들을 직접 구해오라고 말한다. 알을 품을 생각에 신이 난 제미마는 재료를 구해오다 양치기 개 켑과 마주친다. 자초지종을 들은 켑은 오두막의 위치를 물어본 후 마을로 뛰어가 사냥개 형제를 찾아간다. 그들은 여우사냥을 잘 하는 형제였다.
만약 제미마가 신사가 말한 재료를 구해오다 켑과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오리구이로 희생되었을 것이다. 신사가 제미마에게 친절을 베푼 이유들이 곳곳에 포착되었지만 알을 품을 생각에 제미마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 제 3자가 그 상황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도움을 준다면 참 고마운 일이다. 종종 어려운 일이 닥쳐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 조언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을 얻는다. 거기다 직접적인 도움까지 받는다면 이 세상이 팍팍하지 않음을 새삼 느끼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힘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미마에겐 켑이 그런 존재였다. 영리한 켑은 제미마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신사가 제미라를 노리는 여우라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리고 사냥개 형제들과 함께 제미마를 위기에서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미마는 신사가 부탁한 재료를 들고 오두막으로 간다. 오두막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누군가 문을 닫아 갇힌 신세가 된다. 그리고 밖에선 사냥개들과 신사가 싸우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교활한 신사는 숲 속으로 도망가고 그제야 제미마는 켑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사냥개 형제들이 달려들어 제미마의 알을 먹어 치워 버렸지만 신사와 싸우느라 다친 그들에게 뭐라 소리칠 수 없었다. 없어진 알을 생각하니 슬픈 제미마는 훌쩍훌쩍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큰 일 난다는 저 문구가 이어진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도 이야기와 그림에 빠져 무척 재밌게 읽었다. 주변 것에 휩쓸리지 않고 오로지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제미마의 행동에 답답해하고, 켑의 등장에 환호하며 여우 신사의 교활함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면서도 그림들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조심스레 책장을 넘기면서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었다. 제미마가 낯선 신사의 친절에 넘어가 위기에 빠졌던 것처럼 절대 낯선 이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것과 누군가 도움을 줄 이가 곁에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된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