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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아래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밤하늘 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부모님이 모두 잠든 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슬그머니 빠져나와 캄캄한 마당을 서성였다. 당시에 짝사랑 하던 동네 오빠네 집을 보며 불이 켜졌는지를 확인하고 혼자 배시시 웃으며 마당으로 돌아와 하릴없이 서성이다 밤하늘을 보았다. 시골이라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별자리라곤 북두칠성밖에 몰라 7개의 별을 세어보고 고개를 푹 꺾고 밤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보며 나는 다음에 커서 무엇을 할까, 나는 누구를 만나 결혼을 할까(초등학생 때 이미 이런 징그러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집 앞 공터 울타리에 떨어진 걸로 착각될 만큼 가까이에서 별똥별을 목격했다. 처음에는 너무 놀랍기도 하고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다가 정말 내가 본 것이 별동별이 맞나 하는 의심과 함께 소원은 빌지도 못했다는 생각에 굉장히 억울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우연히 바람을 불어 넣는 별자리 공 하나를 얻게 됐다. 그 공에 구멍이 뚫려 바람이 새어도 굉장히 소중해 고등학교 때까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뒤의 행방은 묘연하다. 그 공을 보면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별자리 공과 하늘을 번갈아 가면서 확인했는데 기억나는 거라곤 머리털자리 밖에 없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해서 밤하늘의 별을 볼 때나 그에 관한 책을 볼 때면 늘 마당을 서성이던 초등학생의 내가 떠올려진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치에코 씨의 소소한 행복』을 읽고 비슷한 분위기이겠거니 하고 이 책을 펼쳤는데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우주 이야기와 우주관에서 근무하는 분의 해설 칼럼이 있어 색다른 묘미를 느꼈다. 상세한 사진도 없고 만화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야기이기도 한데 두루뭉술할지언정 이상하게도 충분히 상상이 갔다. 쉽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문외한이라 어려운 것도 있었고 흥미롭게 알아가는 이야기들도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봐도 눈으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별과 별 사이를 행성이 날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떠올려주세요. ‘혼자가 아니란’ 사실을. (84쪽)
다른 행성의 중력이로 인해이나 궤도에서 튕겨져나가버렸다는 떠돌이 행성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었을까? 떠돌이 행성에 대해서 들어보긴 했지만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런 행성들을 보면서 어떤 감정을 떠올려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이다. 그런 행성들이 은하계에 수천억 개가 존재한다고 하니 외롭고 힘들 때 종종 밤하늘을 쳐다보았던 것이 본능적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나 보다. 그 행성들에 대해 정확히 알진 못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답답할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았던 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우주관에서 일하는 안도 카즈마의 칼럼 해설이 가끔 끼워 맞춰지지 않을 때도 있고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평범한 사람으로서 가끔 하늘을 보고 사는 입장에서의 저자와 매일 하늘을 관찰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의 시선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균형은 맞춰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우주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새삼 나라는 존재, 내가 상상하지 못한 광활한 우주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떠올려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존감이 바닥일 때 나는 우주의 먼지 한 톨만도 못하다고 내 스스로를 비하한 적이 있었다. 내가 사라져도 이 세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며 나의 존재조차 모를 거라고 말이다. 그러다 종교를 갖게 되니 우주란 곳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보였다.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 안에서의 우주와 종교 안에서의 우주가 공존할 수 있는 부분을 좀 더 정확하게 구별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지만 우주에 대한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나면 내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고 대단하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런 우주의 이야기만 계속 듣고 있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정말 작게 느껴지는 반면 아름다운 별 지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리가 보는 별 빛이 몇 년 전, 혹은 몇 백 전 전에 출발해 우리에게 와 닿은 것처럼 굉장한 거리에 서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사실을 알자 뭔가 감미로우면서도 어릴 적 밤하늘을 보면서 가졌던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좋았다. 지금은 너무나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내 안의 어딘가에 스쳐지나갔던 많은 생각들 가운데 특별한 것도 있었다고 말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순 없지만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늘을 쳐다보는 시선이 달라짐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특별한 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도 감상적으로 다가오는 이 느낌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