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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던 나는 일요일이면 등 뒤로 사라지는 집을 나서는 것이 싫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돌아 우리집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만 단 둘이 그곳에 있는 게 싫었고 누군가 늘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나의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9명의 자식들이 아무도 없는 집에서 적적하거나 어려운 일은 없을지 14살의 나는 내 앞가림도 못하면서 그런 무게를 떠안고 냉기 서린 자취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나는 프랭클린에게 그녀에 대해 전부 말해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그웬이라고.
“또다른 세상이었어요. 나는 그 세상을 즐겼던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그러고 나자 그런 말을 한 나 자신이 싫어졌다.「돌리」중
내가 매주 일요일마다 부모님의 집을 떠나오면서 가졌던 걱정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혹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세상이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6일을 떨어져 지내면서 나와 전혀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던 부모님. 그 세계가 어떠한 곳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근원 없는 두려움을 늘 짊어지고 내 일상으로 돌아와야 했다. ‘또다른 세상이었’다며 말한 주인공의 대화에서 유년시절의 걱정을 굳이 끄집어 낸 것은 이 작품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마치 내가 속속들이 개입해서 적적함을 덜어내고 싶어했던 부모님의 삶, 혹은 일상이 아닐까란 닮음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루는 것은 ’사람, 사람, 사람‘ 이다." 라는 미국 소설가의 말처럼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사소하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 작품 속에는 가득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더욱 질색하면서도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견디지 못한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는 잊혀진, 혹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그들의 이야기를 안다고 해서 무언가 큰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내면이든 외적이든 평범하게 살아오다 변화를 겪어도 다시 자신의 울타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사람들. 순식간에 결혼이 결정되고 파혼을 당했음에도 화를 내지도 원망석인 추궁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오는 여인(「아문센」), 기차 안에서 만난 남자와 격정적인 탐닉 후에 아무렇지 않게 헤어지는 모습(「일본에 가 닿기를」),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그 또한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어 묘한 동거가 이어지지만 결국 그녀를 가차 없이 떠나던 남자(「기차」) 등 인생의 굴곡이 드러나지만 결국 다시 평행선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그런 평행선으로 돌아오기까지 감정을 과잉으로 드러낸다거나 아쉬운 마음도 없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행동하는 모습에 그들의 표정을 짐작하기 힘들었다. 저자의 절제된 문체의 영향이 크겠지만 잿빛 도시 사람들을 마주한 듯 이야기는 있지만 표정이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마치 내 모습을 들킨 양, 움찔하면서도 씁쓸한 그 감정을 감출 길이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녀는 머릿속에서 시를 구상했던 것 같다. 지금 퍼뜩 그것이 -케이티에 대한, 피터에 대한, 인생에 대한- 또다른 배반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일본에 가 닿기를」중
어쩌면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또다른 배반행위’를 용기 있게 드러냈는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일에도 담담하게 임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활력 없는 진부함을 느꼈을지라도, 나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특별하게 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듯 했다. 내면 속에는 무수한 생각과 상상이 들끓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있는 배반행위. 그것을 당당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생각으로만 그치고 있는 행위. 그 어느 것에도 충실하지 못하기에 결국은 배반행위가 되고 마는 현실에 대한 안주. 후회는 하되 반성은 없는 일상의 연속이 미래의 나를 더 흐릿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작품들로 인해 너무나 적나라하게 봐버린 셈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단편임에도 끝맺음이 허무하거나 낯설지 않았고 마치 경계 없는 하나의 소설 같기도 했다. ‘마지막 네 작품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다. (중략) 나는 이 네 편이 내 삶에 대해 내가 이야기하는 최초이자 마지막-그리고 가장 내밀한-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라고 했듯이 오히려 마지막 네 작품에서 퍼뜩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저자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나직하면서도 진솔하게 다가왔고 앞서 펼쳐진 단편들에서 느꼈던 안개 속을 거니는 몽롱한 의문이 비로소 확실하게 드러났다. 내 유년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고, 일요일마다 집을 떠나오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걱정의 이면을 이 작품 속에서 보았다고 생각하자 그제야 무거운 마음을 덜어낼 수 있었다. 내가 그 공간에 속해 있지 않다고 해서 불안함을 느끼기보다 어디선가, 그렇게 알 수 없는 곳에서(소설에 등장하는 타국의 작은 마을일지라도)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아마 십대였을 때, 마음속에 어두운 구멍을 간직한 내가 지금의 나는 더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까지.「시선」중
사람들 속에서 일어난, 사람들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이 소설들로 인해 보이지 않던 내면의 성숙을 이뤄낸 것 같다. 오래도록 간직했던 두려움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는 사실만으로도 홀가분해진 것 같다. 그 홀가분함이 가벼워지지 않도록 그 자리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키워볼 생각이다. 내 편견으로 얼룩진 세상이 아닌 제대로 된 시각. 사람을 따듯하게 바라보는 시선부터 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