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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조수가 밀려오고 밀려나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다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백일몽에 빠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듯이 자신에게도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으며, 거기에는 알려진 또는 알 수 있는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브리맨』 130~131쪽)
바다를 바라보면 저 물살에 내 몸을 맡겨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 세상이 지속되리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 상상의 이면에는 '삶이 우연히, 예기치 않게 주어졌으며, 그것도 한 번만 주어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 번뿐인 삶이니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함에도 왜 늘 우리는 포기가 더 빠른 것일까. 나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희망보다 막막함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웬일인지 갈수록 협소해지는 내 마음 상태가 이 문구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게 한다.
황폐한 공동묘지에 주인공이 묻히는 것으로 시작된 소설은 죽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이 죽음을 맞이한다는 긴장감도 없이 죽음으로부터 그가 살아온 과거의 시간을 더듬어간다. 그렇게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편안함마저 든다. 그가 곧 죽음을 맞이한다는 긴장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처럼, 죽음 또한 언젠가는 다가올 일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이 책의 제목처럼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감동을 만나고 나서 그동안 간과하고 있던 죽음, 특히나 노년의 고독과 죽음에 관해 적나라하게 마주하자 나의 젊음이 영원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다.(23쪽)' 라는 말처럼 흔해빠진 죽음 앞에서 이미 익숙해진 우리지만 그 충격이 오래가지 못하고 쉽게 잊히는 사실 앞에 침울해져 버렸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이미 삶을 끝낸 사람의 인생을, 그것도 젊은 시절의 그가 아닌 노년에 바라본 삶의 언저리들은 쓸쓸했다. 그가 욕을 해대는 흥분 가운데서도, 이미 맞이한 죽음을 한탄하는 과정에서도 분노와 슬픔은 외로웠다. 주변에 너무 흔한 노인의 내면을 이렇게 들여다 싶었을까 싶을 정도로 쓸쓸하고 고독한, 어쩌면 우리가 밟게 될 삶의 전철이 아닌가란 두려움이 엄습할 정도였다.
오랜만에 비로소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내 인생의 주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 순간에 왜 내가 내 삶을 불신해야 할까?(37쪽)
어쩌면 이 소설이 내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된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의 양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이 숭고하게 끝나는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 나약하고 두렵고 때론 악다구니를 해대며 죽음 앞으로 다가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런 담담함이 오히려 평범할 것 같은 소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어떤 화려한 이야기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전해주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 이런 소설을 이제야 만났다는 사실과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 흥분 속에 내용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그렇다보니 언제가 될지 모르는 죽음을 조금 편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죽음은 모든 것을 단절시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내 삶을 돌아보며 기쁨과 슬픔, 분노와 쓸쓸함 이 모두를 다시 되뇔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흔한 죽음의 과정이 될지 모르지만 그 삶의 주인인 내 자신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삶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