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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거절술 -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
카밀리앵 루아 지음, 최정수 옮김 / 톨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어떤 일이 되었건 거절을 당한다는 것은 결코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기운 빠지는 일이고, 나처럼 심약한 사람은 심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사랑을 거부당했건, 꿈꿔왔던 일이 좌절에 빠졌건, 내 존재나 내가 희망했던 일들이 거절당하고 거부당한다면 좋은 기억으로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그동안 내가 받은 부끄러운 거절 편지들을 모두 보관해두었고, 심지어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일부러 그 편지들을 특징에 따라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분류' 해 놓았다며 다양한 거절의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건네고 있는데 처음엔 이 용기를 내라는 말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부한 말인 줄 알았다.
저자는 '여기엔 당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매정한 거절 편지가 있다.' 라고 했는데 '편집자가 소설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이란 부제를 봤으면서도 나의 상상력의 한계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저자의 말대로 정말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매정한 거절의 편지가 있었고, 그 편지들을 읽다 나도 모르게 킥킥대고 말았다. 웃으면 안 되는 상황임에도 편집자들의 다양한 거절편지에서 그들의 심리적 상태와 거절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 실소가 나와 버린 것이다. 블랙코미디처럼 펼쳐지는 거절 편지들이 이렇게 다양할지 상상도 못했지만 정말 방대하과 광활(?)했다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다.
가장 먼저 눈에 띤 점은 저자가 '특징에 따라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분류'했다는 제목이었다. 99가지의 거절 편지에는 저마다 짧은 제목이 붙여져 있는데 편지의 내용과 너무 잘 맞아떨어져 그 간단명료함과 냉철함(거절의 편지를 받다보니 달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간이 있을 때 펜을 놓으라는 <맹비난>부터 탈락이라는 단 한마디가 적힌 <직언>, 너무 많은 종이를 더럽혔다는 <분풀이>, 해석할 수 없는 <베트남어>, 편집자가 보낸 편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탈자가 심한 <오자투성이>, 무정부주의 만세를 외치는 <아나키즘> 등 정말 제목과 내용이 하나가 되어 비수를 꽂는 편지들이었다.
처음엔 이 거절의 편지들을 받았을 당사자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나름 경건하게 읽어 내려갔다. 이런 편지를 받는 사람이 있구나, 심정이 어땠을까 하는 아련한 마음도 잠시, 철저히 편집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편지들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의 내면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일단 거절의 편지를 쓰게 만드는 원고 투고자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담당 편집자로 하여금 이런 편지를 쓰게 만들었고, 거절의 편지다 보니 결코 좋은 내용으로 채워질 수 없었다. 개중에는 정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주는 편지도 있었지만 결과는 거절이었기에 큰 용기를 얻을 수 없었다. 오히려 히스테리를 부리고, 분석하고 비평하고, 쓰잘데기 없이 자신의 처지나 회사의 입장을 밝히는 편지들 속에서 솔직함을 더 느꼈다. 그런 편지들을 99통을 읽다보면 소설이 어떠한 내용이었는가가 궁금한 게 아니라 편집자의 시선에서 왜 그들은 이런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가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듯 했다.
그럼에도 거절의 편지 강도는 전혀 약해지지 않고 원고를 잃어버렸으니 비밀로 해달라는 둥, 이런 원고들이 쌓여가는 게 징글징글 하다는 불평을 하고, 혀짤배기소리로 거절을 하는가 하면, 희곡으로 거절의 뜻을 전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거절의 편지에 면역이 생겨 다시는 글을 쓰고 싶지 않은 절망감을 안는 게 아니라 무시하고 진가를 알아줄 출판사를 찾아 재도전 할 의사까지 생기게 된다. 실제로 이런 편지를 받고나서 다시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겠지만 저자가 거절의 편지를 쓴 의도를 파악한 이상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된다.
무언가에 면역이 되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만 긍정적인 면역은 오히려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린 거절의 편지를 읽고 좌절하느냐, 용기를 얻느냐는 순전히 개인의 몫에 달렸다. 다양한 편집자의 편지를 읽다보면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편지를 쉽게 만날 수 있는데 그런 편지에 휘둘리는 여부도 철저히 내 마음가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충고를 받아들이되 심신박약에 시달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굉장히 독특한 책이었고 저자의 태연한 능글맞음(?)에 마음을 뺏겨 웃음을 터트린 부분도 많았다. 아무래도 편지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배제한 채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혹여나 소설을 투고하고 기다리고 있는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용기를 잃길 바라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좀 더 자신의 처지를 미뤄놓은 채, 멀찍이서 이 책을 바라보며 저자의 진실 된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굳은 의지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