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의 집 3 - 플럼 시냇가
로라 잉걸스 와일더 지음, 가스 윌리엄즈 그림, 김석희 옮김 / 비룡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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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의 즐거움은 독서이고 단연 『초원의 집』 연작소설로 그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있다. 하루에 한권씩 읽고 리뷰를 쓰면서 마무리하는 일상이 며칠째 이어지다보니 이 소설을 다 읽어버린 뒤에는 무척 허전할 것 같아 걱정이 벌써부터 앞선다. 신기한 것은 책의 내용에 따라 또 나의 기분과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읽힌다는 점이다. 문학을 읽을 때 그런 감정의 변화가 장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오늘은 예기치 않은 곳에서 맞닥뜨린 상황 앞에서 보인 나의 행동에 적이 놀라며, 다시 한번 감정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목도하게 되었다.

 

  오늘은 조금 힘든 하루였다. 아침부터 별일 아닌 일로 남편과 다투었고 화해를 하지 못하고 남편은 잠자리에 든 상태다. 나는 줄곧 책만 읽었지만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은 채 온통 불편한 마음만 삭히고 있었다. 그런 상태다 보니 두 번째 이야기에 비해 훨씬 밝고 따뜻하고 안정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로라네 가족에게 힘든 일이 닥치자 내 마음은 더 무겁게 가라앉아 버렸다.

 

  로라네 가족은 초원의 집을 떠나 미네소타 주까지 이주한다. 그곳에서 타고 온 말과 포장마차와 작은 토굴집과 땅 등을 맞바꾸고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간다. 로라네 가족에게 토굴집은 생전 처음이었지만 초원의 집에서처럼 막연한 불안감은 많이 사그라졌다. 인디언들을 마주해야 할 불안감도 없었고 들짐승들의 출현에 겁먹지 않아도 되었다. 토굴집 근처에는 냇가도 흘렀고 읍내까지도 비교적 가까운 편이었으며 무엇보다 땅이 비옥해 내년 농사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었다. 로라 아빠는 부지런하고 성실해서 금방 새집을 짓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며 희망찬 미래를 그려나갔다.

 

  무엇보다 로라와 메리가 맘껏 뛰어놀 수 있는 풍요로운 자연과 가족들이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 좋았다. 삭막하지도 않았고 늘 긍정적인 가족애로 어디서든 희망을 잃지 않았다. 아빠와 엄마는 서로를 배려했고 아이들에게도 다정다감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로라와 메리, 막내 캐리가 건강하고 착하게 자랄 것임에 늘 안도감이 흘렀다. 한동안은 토굴집에서의 많은 경험담으로 첫 번째 이야기의 따스함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로라네 아빠가 통나무집이 아닌 판자로 된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더 깨끗하고 청명한 안락함이 파고들었다. 모든 일은 착착 진행되었다. 아빠는 밀농사를 준비했고 밀을 수확하고 나면 더 풍요로워 질 거라는 기대를 한껏 안고 있었다. 로라와 메리에게도 읍내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 큰 변화가 생겼다.

 

  로라와 메리는 학교를 좋아했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면서 빈부격차와 다양한 환경의 친구들의 영향을 받게 됨을 알고 잠시 로라네 가족의 현 상태를 잊고 있기도 했다. 로라와 메리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아이들이었음에도 촌뜨기라 놀림 받고 부자 아이의 시샘을 받기도 하는 등 보통 아이들이 겪을 만한 일들도 경험하게 된다. 오래 지속될 것 같았던 그런 평범하고 평화로운 나날은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로라네 가족에게 고난이 닥친다. 로라의 아빠는 밀을 수확하면 집을 지을 때 외상으로 가져온 자재 값도 치르고 말도 구입하고 이것저것 풍성하게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밀 수확을 앞두고 거대한 메뚜기 때를 만나고 모든 것이 절망으로 바뀌어 버린다.

 

  내 마음이 무거웠던 터라 로라네 가족에게 닥친 불행 앞에서 나의 기분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로라네 가족이 너무 안타까워 지켜보기도 힘들었고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로라네 가족은 언제나 꿋꿋하고 용기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 바로 드러났다. 로라네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멀리 동부로 일자리를 구하러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그런 아빠를 애틋하게 기다리며 어려운 시기를 잘 견디고 있었다. 밀농사를 망쳤지만 다음에는 잘 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고 가족들이 하나 되어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모습에서 어떤 힘든 일도 견뎌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그런 로라네 가족의 모습을 지켜보았기에 그들이 풍족하진 않지만 부족한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작은 선물에도 기뻐하고 감사해할 줄 아는 가족을 보면서 얼마나 검소하게 사는지 실감을 못했던 것 같다. 느닷없이 내가 눈물을 흘렸던 곳은 크리스마스에 교회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었다. 로라네 가족은 조금 안정이 되면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크리스마스 때 받은 선물들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임을 보고 그만 눈물이 나버렸다. 그들의 생활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머플러, 숄, 외투, 모피 케이프가 모두 로라네 가족에게 선물로 들어왔다. 그 선물들은 목사님이 동부에 있는 교회 신자들에게 받아온 선물들이었는데 선물을 받고 너무 기뻐하는 로라네 가족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이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도 다툼이었지만 요즘 나의 마음은 굉장히 팍팍했다. 풍요롭지 않은 나의 처지에 조금은 기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마침 오늘 들은 설교말씀이 생각났고 로라네 가족의 소박한 기쁨과 마주하고 보니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내게 주어진 것들이 결코 부족하거나 불행한 것들이 아님에도 감사해 하지 않고 징징대고 있었다. 로라네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 낯모른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담긴 선물과 마음 씀씀이 앞에서, 그들보다 더 풍요로우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나의 강퍅한 마음이 겹쳐져 눈물을 쏟아내자 마음이 풀어져 버렸다. 남편과의 사소한 다툼은 더 이상 문제되지 않았고,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선가 타인의 도움을 바라고 있을 사람들이 생각났다. 엉뚱하다면 엉뚱할 수 있는 나의 이런 감정의 기울임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함께 일었다.

 

  로라네 가족을 보면서 마음 졸이기도 하고 함께 기뻐하며 때론 낙담하기도 했지만 오늘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었다. 종종 누군가 왜 그렇게 책을 읽느냐고 물으면 책이 재밌어서라고 말하지만 이렇게 예기치 않은 내면의 치유와 맞닥뜨리기 때문에 책을 읽는 이유도 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용기를 얻고, 무엇보다 달라진 게 없을지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늘이 나에게 꼭 그런 날이다. 성실하게 삶을 살아온 로라네 가족의 이야기가 있기에 어느 곳에서 또 다른 치유와 용기를 받을지 모른다. 그런 기대감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반면 내 마음의 평화가 내려와 이 밤이 무척 풍요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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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01-05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뒤엣권도 즐겁게 읽으셨겠지요?
아무쪼록 날마다 즐거운 삶
지으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