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매년 부커상 수상작을 챙겨 읽는 건 아니지만 줄리언 반스 작가가 수상한 이 작품은 꼭 읽어보고 싶었다. 서가에 저자의 책이 여러 권 있음에도 만난 적이 없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줄리언 반스 작가의 문학세계로 입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의 작은 열망이었다. 아니다 다를까 두 호흡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인력 강하고 사유가 가득한 그의 작품은 독자를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뒤표지에 있는 카피와 설명을 보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을 더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1부를 읽고 무심코 뒤표지를 봤을 때 '충격적이고 강렬한 반전' 이란 말에 궁금증이 일어 2부는 1부 만큼이나 편안하고 진지하게 만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기억은 우리를 배반하고, 착각은 생을 행복으로 이끈다...

 

  적어도 이 카피는 이 작품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아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억이라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합리화 및 회유 시키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 앤서니 웹스터, 즉 토니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의 기억부터 40년이 지난 현재 자신의 이야기를 덤덤하면서도 무심하지 않게 인생의 고비마다 고민한 흔적이 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처음 고등학교 시절 똑똑하고 완벽한 에이드리언을 만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릴 때만 해도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네 남학생들의 학교생활과 그들의 고민을 보면서 청춘소설을 보는 듯해 괜히 흐뭇해졌다. 햇볕을 잔뜩 머금은 이불 위에서 뒹굴 거리는 기분,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들도 '그렇다, 당연히 우리는 허세덩어리였다. 달리 청춘이겠는가.'라고 말했듯이 청춘의 에너지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느끼게 만든다.

 

  그들의 청춘 이야기가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졸업을 했고 대학을 가거나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멀어지기도 하면서 우정을 간직한 그런 사이였다. 토니가 가장 먼저 여자 친구 베로니카를 사귀게 되었고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주었다. 베로니카의 오빠와 에이드리언이 같은 학교 같은 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만 해도 그들이 후에 연인이 될 거라는 상상은 할 수 없었다. 에이드리언과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잠깐의 생각은 했지만 토니와 베로니카의 대립도 어느 정도 긴장감 속에서 지속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헤어졌고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가 연인이 되었다. 에이드리언이 토니에게 전 여자 친구인 베로니카와 만나도 되겠냐는 정중한 편지를 보냈음에도 토니는 분노한다. 그리고 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 그가 돌아왔을 때 에이드리언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답게 완벽한 자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이유와 완벽한 자살 방법이었다. 그러나 그는 왜 자살을 해야 했을까. 고등학교 때 친구의 자살을 두고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 이라고 했던 그가. 왜.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토니는 결혼도 하고 이혼도 하고 은퇴도 하면서 평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약간의 유산과 편지,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남겨주기 전까지.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베로니카가 가지고 있었다. 많은 시도와 방법에도 불구하고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손에 넣지 못했지만 토니는 자신이 40년 전에 썼던 충격적인 편지를 베로니카에게 건네받는다.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의 만남에 대해 저속하고 충동적인 욕설과 저주와 분노가 가득 담긴 편지였다. 에이드리언의 자살, 그리고 편지 속에서 자신의 저주가 실제로 이뤄져버린 한 생명에 대한 확신. 그 모든 것이 토니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40년 전으로 돌아가 그 편지를 지울 수도(무엇보다 토니는 그 편지를 기억조차 하지 못했고 자신의 시선에서 독자에게 들려준 편지와는 내용이 판이하게 달랐다.), 에이드리언에게 사과도 할 수 없었다. 옮긴이의 말 제목처럼 '예감하지 못하는 모든 평범한 이들을 위한 서글픈 면죄부'를 낱낱이 지켜봤다고 밖에는.

 

  충격적인 반전은 토니가 보낸 편지와 그의 저주가 현실이 되어버린 한 생명의 실존이었다. 2부를 읽는 내내 '토니가 자살을 하나? 에이드리언의 아이인가? 혹시 토니의 아이? 아냐, 그는 그날 콘돔을 착용했어' 등등 엄청난 가능성을 탐하느라 저자가 곳곳에 펼쳐놓은 사유 속으로 온전히 들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책의 초반부터 끝까지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도 건져 올리지 못한 삶에 대한 고민과 확신들이 즐비하다보니 멈추지 않고 전진하는 격이 되어버렸다. 적당히 깊이 있고 적당히 삶을 향해 뻗어나가는 인간 군상을 보면서 평범하다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평범하다고 확언했다. 그러나 예기지 않는 과거의 드러남과 결과물 앞에서 혹은 그 사실을 이제 깨달은 주인공의 혼란 속에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충격적인 반전이라기보다는 결과물을 예측하지 못한 어이없는 과오였고 망각이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우리도 곳곳에서 저지르고 있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 결과가 이미 드러났거나 잠재적 세월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현재를 직시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불확실한 기억, 불확실한 생각과 충동적인 행동과 말들. 그 틈에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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