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 루나파크 : 훌쩍 런던에서 살기
홍인혜 지음 / 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 사람을 '떠돌이'와 '머물이'로 양분한다면 난 일백 퍼센트 후자였다. 모험은 용감한 사람이나 하는 거였고, 나는 평생 남의 모험담을 들으며 동경하고 감탄이나 할 사람이었다. (16쪽)

 

  책을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과 만나게 되는 여행서. 앞으로 내가 읽어야 할 페이지에서 얼마나 공감이 되는 말들을 만날지가 빤히 보였다. 나는 곧 흥분상태에 이르렀고 글자가 빠져나갈 틈 없이 정독했다. 여행서를 분위기와 느낌으로 마주했던 나에게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이런 책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감격하고 말았다.

 

학생 때는 얌전히 학교만 다니고, 사회인이 되어서는 조신하게 회사만 다니는 그런 사람. 단지 회사를 벗어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는 기분이 들었다. 성냥갑만 한 나의 세계, 빨대처럼 좁고 일방향인 나의 시야. 나는 너무도 작고 어린 사람이었다. (20쪽)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영국으로 떠나, 그것도 반년이나 런던에 머무르면서 살아갈 거란 생각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의 심경이었다. 어쩜 나와 이렇게 같은지. 어쩜 나를 대신해서 솔직하면서도 정갈하게 쓰고 있는지 왈칵 눈물을 쏟을 뻔 했다. 내가 꼭 그런 사람이었다. 공부는 못하면서 모범학생 저리 갈 정도로 학교에 충실하고, 회사를 벗어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런 내가 현재는 회사를 벗어나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와 현재의 내가 조금 다른 면이라고 한다면, 내가 거의 10년을 다닌 회사를 관두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과감히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었겠지만 두번째 회사를 관둔 지금은 그럴 용기조차 없다는 점이다. 저자가 말한 '삶의 방향성을 상실'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새로운 방향을 바라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여행서를 만나왔다. 내가 마주한 여행서는 '나는 당신처럼 용기를 내어 떠날 수 없으니 그곳의 생활을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있는 독자에게도 간접 경험을 시켜 달라'는 일종의 요구로 만나왔다. 그렇다보니 내가 대부분 만나는 여행서들은 설레고 다른 풍경에 놀라고 현재를 더 소중히 하게 되는(물론 여행지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일들도 일어나지만 철저히 여행자이고 싶었던 나는 그 경험은 배제시켜 버렸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행서들만 보아왔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제목부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했듯이 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지 강렬한 동기부여와 함께(어느 누구라도 당장 만들어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동기 부여다.)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만나왔던 여행서들은 솔직하지 않았다는 건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여행지에서 만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일화만 그려지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 맛본 절망감, 권태기, 실망감 및 어이없음까지 모두 총망라 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거닌 영국의 거리들이 생각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더 통렬하게 공감하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낯선 나라에서 나라는 존재를 또렷하게,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는 이유였다. 아직 겁이 많아 혼자서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은 꿈도 꿔보지 못한 나에게 저자의 런던 체류기는 또 다른 나를 보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행지에서는 자신을 감추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도 여행지고 그런 경험이 짜릿해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저자는 런던에서 한국에서의 자신, 그리고 현재 머물고 있는 런던에서의 자신 그 어떤 것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했다.

 

  런던의 이야기만으로 가득할거라 생각하거나 환상적인 런던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기대하고 펼쳤다면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자신과 마주한 저자의 내면이 솔직하게 그려진 모습에 홀딱 반한 나로서는 이 책을 여행서라기보다 자아 성찰을 그린 과정으로 보고 싶었다. 물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동기부여와 여행이라는 매개물로 일궈낸 결과물일 수도 있으나 그 모든 것에 '나' 가 빠져 있다면 무슨 소용일까. 우리는 늘 자신에게 실망하고 기대하고 미워하며 살아하기를 반복하지 않던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주기 보다는 자신을 하대하고 과소평가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에게 가장 먼저 이 책을 권했고 그런 기미가 보이는 사람에게 혹은 그런 과정을 선사해 주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졌다. 여전히 무작정 모든 것을 내려놓고(이 책을 통해 여행을 갈 땐 '모든 것을 내려놓고'가 아니라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여행을 떠날 용기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 자신과 마주하는 방법은 조금 배운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란 용기는 없지만 '지금이 아니면 후회할지 모른다'(같은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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