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이 있다 샘깊은 오늘고전 13
이경혜 지음, 정정엽 그림, 허균 원작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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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허균이란 인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겨우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있었을 뿐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시인으로서 어떠한 작품을 남겼는지 전혀 아는바가 없었다. 그러다 이 작품을 통해 허균이란 인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고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다. 많은 시를 남겼다는 것도 생소하지만 시안에 담긴 그의 내면의 소리가 절절하면서도 가슴 아팠다. 소설가이기 전에 시인 허균으로 볼 수 있는 확신을 갖게 된 책 『할 말이 있다』. 책의 제목은 나라를 엎으려 했다는 죄명을 쓰고 형장으로 끌려갈 때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그가 어떠한 말을 하려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이미 '한 말'은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는 이경혜 님의 말마따나 '그가 이미 '한 말'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말 중 몇 마디는 우리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나 역시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시들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허균이란 인물에 대해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책머리에 친절하게 허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데 그 부분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에 실린 시들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유복한 집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란 허균은 형 허봉, 누나 허난설헌과 함께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틈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그다지 불행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20대에 들어서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하나씩 잃는 불행을 겪게 된다. 형 허봉이 귀양길에 풀려나 객지를 떠돌다 죽고 다음 해에는 누나 허난설헌을 잃는다. 가장 사랑하던 형과 누나를 잃은 것으로 모자라 스물셋이 되던 해에는 임진왜란을 겪는다. 피난길에 아내는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죽고 갓 태어난 아이도 죽고 만다. 게다가 이년 뒤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뜬다. 마치 약속이나 한듯 사랑하는 사람을 줄줄이 여읜 허균은 더이상 유복한 집안의 도련님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돼'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허균은 '현실 정치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선비였다.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 수많은 시를 남겼지만 그의 친구 권필이 권력자를 비판하는 시를 썼다가 죽자 그도 그만 붓을 꺾고 시를 쓰지 않았다. 그 후에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펼치지만 그의 권력이 커지자 그는 제거를 당하고 만다. 정치적인 죽임을 당한 허균이었지만 '시인이고, 문인'으로 보는 시각에 처음에는 동의하지 못했다가 그가 남긴 흔적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나자 그가 쓴 시를 읽으면서 어느 것 하나 허투로 읽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신의 생각을 시로 남겼으니 그가 어떠한 마음을 품고 시들을 쓰게 되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다. 조금씩 그의 내면을 알아 가면 갈수록 개운한 마음이 든 것이 아니라 마음이 저릿저릿 아파왔다.

 

  그 당시 활동하기에 너무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였기에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런 삶에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시들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쩌면 원문 그대로의 시를 싣고 해석에만 치중했다면 시인 허균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린이를 위한 고전 시리즈인 만큼 어렵지 않게 다듬어 묶은 시인데 어른인 내게 오히려 더 쉽고 편안하게 다가와 놀랐다. 쉬워서 가벼운 것이 아니라 허균의 내면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게 다가와서 시를 들려 주는듯 했다.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시에 남겨 책 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반면 그의 온갖 감정들 또한 모두 감당해야 할 숙제가 되기도 했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걸러지는 것이 아니라 직구로 들어올 때의 당황함. 현재의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시를 통해 이렇게나마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미안했다.

 

  이경혜님은 '어쩌면 시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감흥을 나타내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느낌을 표현하더라도 자신이 느낀 것처럼 드러낼 때 강렬한 전염력이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허균의 마지막 말 "할 말이 있다!" 그 한 줄의 말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마지막 시가 아닐까 생각해 보신다고도 했다. 허균의 시를 읽고 나니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충분히 공감이 갔다. 해설에서도 '인간 허균'의 참모습을 생생히 드러낸다고 했는데 이 책에서 느낀 매력이 바로 그 점이었다. 그래서 허균 이란 인물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내가 경험한 듯한 강렬함이 내면을 뒤덮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글들을 더 찾아보려고 한다. 작품을 더 찾아 읽어보면서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려 한다. 허균이란 인물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닌 굉장히 가까이 있는 기분이 들어 괜히 빈 하늘만 더 쳐다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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