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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이 세상에 나 혼자라고 느낄 때의 이질감만큼 당황스러운 것이 있을까. 내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알면서도 그것조차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혼자라는 기분. 그럴 때 나를 스쳐간 것들, 짧은 생일지라도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을 생각해본다. 그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나를 전혀 알지 못하는, 나도 그들을 알지 못하는 과거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나와 전혀 다른 환경, 처지,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으면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 그들이 본 풍경이 지금과 조금은 닮아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과거의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 그런 기시감이 찾아올 때 비로소 나는 위로를 받는다.
그러나 과거와 연결된 희미한 느낌이 알면 알수록 나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떨까. 나의 존재감을 발견하는 시간, 위로를 받던 낭만적인 시간은 모두 사라져 버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충격과 상실감으로 더 혼란스러워질지도 모르겠다. 그 사건의 진실이 치욕스러웠다면 그 일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덮어두려 하고 잊어버리려고 했다면 그 와중에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잡지사 기자인 줄리아가 꼭 그랬다. 처음 '벨디브 사건'을 기사로 쓰기로 할 때만해도 자신이 발견할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앞으로 어떠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지 알 수 없었다. 만여 명의 유대인들이 60년 전에 프랑스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 그 안에 4천명에 달하는 어린아이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프랑스인조차도 그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감추기에만 급급했고 그 일을 자행한 것이 프랑스 경찰이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왜 평범한 줄리아의 삶을 흔든 것일까.
그녀는 미국 태생으로 프랑스로 건너와 매력적인 프랑스인 남편 베르트랑과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딸아이도 잘 자라고 있었고, 일도 만족스러웠으며 남편과도 사이가 좋았다. 그러다 시할머님이 살고 있던 넬라통 가의 아파트가 시점이 되어 그녀의 삶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이 들어갈 아파트에 살던 사람이 벨디브 사건의 희생자 가족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그녀는 그 가족을 추적함과 동시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던 12살 소녀 사라의 흔적을 좇게 된다. 60년 전 12살 소녀였던 사라의 이야기는 줄리아의 이야기와 함께 펼쳐진다. 이 두 이야기가 중첩되면서 1942년의 파리, 그리고 2002년의 파리가 사라와 줄리아를 통해 생생히 전해진다. 그리고 비극적인 그 사건의 전말도.
사라는 갑자기 나타난 프랑스 경찰에 의해 엄마와 함께 끌려간다. 어린 남동생은 늘 사라와 함께 숨었던 다락방으로 들어가고 금방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사라도 남동생을 다락방에 숨겨주고 문을 잠근다. 그리고 그 열쇠를 꼭 쥐고 부모님과 함께 경찰을 따라나서지만 그곳은 파리와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남동생은 그렇게 홀로 다락방에 남겨졌다. 사라를 비롯한 부모님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라는 절망한다. 제발 남동생이 무사하기만을 바랐지만 수용소에서 부모님과도 헤어지고 생사를 알 수 없게 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남동생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게 수용소를 탈출해 한 노부부의 도움으로 파리의 집까지 찾아온다. 집을 떠난 지 수십 일이 지난 뒤였다.
사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안 줄리아의 삶과 한 남자의 삶을 바꿔버리는 진실들도 파헤쳐지고 있었다. 그녀가 벨디브 사건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사라라는 소녀가 살던 집이 바로 시할머님이 살던 집이었고, 그 집으로 들어가기로 되어있던 그녀에게도 혼란이 인다. 시아버님께 벨디브 사건이 있던 시기에 어떻게 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지 묻지만 더 이상 캐묻지 말아달라는 답변이 올 뿐이다. 그런 와중에 그녀는 그토록 원했던 둘째 아이를 갖지만 남편은 그 아이를 지우라고 한다. 그녀를 무척 사랑하지만 아이는 원치 않는다고, 자신이 파괴되어버리는 것 같다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남편과 사라라는 아이를 추적하고 시댁에 감춰진 비밀을 풀고 싶은 혼란스러움에 힘겨워한다.
사라와 줄리아의 이야기가 시대를 달리 하면서 흘러가지만 결국 그 두이야기는 사라가 파리의 집으로 돌아가 동생과 조우하는 순간 이야기는 하나가 된다. 1인칭이던 사라의 이야기는 사라지고 줄리아가 그 후 사라를 추적하는 시선으로 전개된다. 줄리아는 사라를 찾아 시부모님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또다시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녀의 흔적을 좆지만 그녀가 만나게 된 사람은 사라가 아니라 어머니의 진짜 이름조차 모르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사라의 등장은 윌리엄의 삶을 흔들다 못해 파괴해 버린다. 사라를 통해 어머니의 과거를 모두 듣게 된 그는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마주한 그에게 줄리아는 못할 짓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와 줄리아는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인데 이제야 서로의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줄리아는 사라의 흔적을 찾았다. 윌리엄을 찾아냈고 윌리엄은 줄리아의 시아버님,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던 오빠 같은 분들과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줄리아는 이혼했다. 남편은 오랫동안 간직했던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났고 딸과 함께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윌리엄을 만났다. 그간의 시간들이 서로에게 아픔과 혼란으로 다가왔을지라도 사라를 통해 연결된 그들은 누구보다 편안해 보였다. 줄리아는 전 남편의 의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의 이름은 사라였다. 그 어떤 다른 이름도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윌리엄에게 고백하고 그 둘은 오랫동안 한 곳을 응시했다. 그렇게 사라의 이야기는 풀렸고, 사라진 듯 했지만 60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의 이야기는 잊히지 않았다.
사라처럼 끔찍한 지옥을 견디고 살아남아, 사랑하는 사람들 없이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가끔 궁금해지곤 한단다. 얼마나 괴로울까,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사라는 모든 걸 포기해야 했잖니. 가족도, 이름도, 종교도. 서로 입 밖에 낸 적은 없지만 그 공허감이 얼마나 깊을지, 그 상실감이 얼마나 지독할지 나는 알고 있단다. (302쪽)
사라라는 12살 소녀의 비극적이고 처참한 삶이 이 소설의 중심에 있지만 '벨디브 사건'이 한 개인의 삶을 얼마나 파괴해버리는지는 적나라하게 목도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도 남동생을 잊지 못하는 사라, 부모님을 잃고 힘겹게 수용소를 탈출했지만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라, 새로운 삶을 위해 멀리 미국으로 떠났지만 결국 그곳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고만 사라. 비단 그런 사람이 사람 한 사람 뿐일까. 우리가 감추고 싶은 수많은 역사 속에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살아왔으면 살아가고 있을까. 사라의 일생을 보며 그녀가 절망하는 가운데 온 몸에 새겨진 상처와 고통을 달래줄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팠다. 그녀의 고통 앞에서 눈물을 흘려보아도 이미 사그라져버린 한 여인의 삶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다만 우리가 저지른 역사의 과오를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슬픔으로 그녀를 기억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기억하는 일이 더 번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