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 빔 벤더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빔 벤더스 지음, 이동준 옮김 / 이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사진집을 볼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오래전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세계가 어느 순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짧은 식견이라 매끄럽게 표현할 수 없지만 그 매력에 빠져 사진집을 보는 것이 즐거워지고 있다. 지금도 흘려보내고 있는 순간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보게 되면 시간을 잠시 잡아놓은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을 것 같은 특별함. 꼭 잘 찍힌 사진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뷰파인더를 통해 왜 그 순간을 포착하게 되었는지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은,』이란 제목은 사진집과 무척 잘 어울린다. 꼭지마다 '한번은'으로 이어가는 시작은 자연스럽다. 그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도, 함께 어우러지는 사진도 모두 진솔하다. 사진집을 볼 때마다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에서 이 사진을 잘 찍었는가 아닌가만 판가름하던 나에게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던 책이었다. 사진에 대해 정직하게 설명을 해준 글도 있고 사진과는 다른 이야기라도 그 느낌을 전달해주고자 하는 글도 있었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 사물에 관한 이야기,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의미가 담긴 짤막한 글과 함께 만나면서 색다른 기분을 느꼈다. 저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사진 찍기와 나의 사진들은 점점 더 이야기를 감지하게 해 주는 것이 됐'고 '시리즈 사진들이 더 많이 들어간 이유다'라고 했다. 분명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인 것 같은데 어느새 사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치 내가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든 것은 이런 이유때문인지도 몰랐다.

 

  우연히 찍혔다고 말할 수 있는 사진, 흔들린 사진, 생생함이 묻어나는 사진, 설명이 필요한 사진들 속에는 저자의 삶과 다양한 만남이 내포되어 있었다. 영화에 대해서 잘 모르는 독자라 할지라도 그가 만든 영화를 한 두 편은 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저자는 다양한 인물들과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풀어놓았다. 내가 잘 모르는 인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때문에 처음엔 이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인물에 대한 주석을 꼼꼼히 읽어도 누군지 모를 때는 그냥 사진과 글이 전하는 분위기를 느끼고자 했다. 그때 전해오는 특유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묘미. 바로 그 점 때문에 사진의 이면을 내 나름대로 상상하고 느낄 수 있어 사진집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 각본을 공동으로 집필한 희곡작가 페터 한트케의 책상 사진과 그의 소설을 읽고 난 뒤의 저자가 남겨놓은 짤막한 글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작업을 하는 책상 사진을 한 번 찍고' '나중에 그의 소설 『느린 귀향』을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꼈던 그를 짓누르던 부담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글이 없었다면 사진 한 장으로 책상에 감추어진 느낌을 유추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오솔길을 걷고 있는 한 할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일정한 속도로 걷다 보면 멈춰 서는 것마다 부담스러워진다.' 이런 느낌도 추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진을 봤을 때 내가 느낌 감정, 저자가 전해주는 글을 통해 느껴지는 분위기, 그런 분위기와 함께 새롭게 다가오는 사진이 어우러져 다양한 시선을 던져 준다는 것이 좋았다.

 

  "사진에 있어서 단 한번이란, 정말로 오직 단 한 번을 의미한다."

 

   내가 핸드폰을 꺼내 무심코 찍어대는 사진도 '그 순간은 모두 일회적이고 고유하다'라는 말에 새롭게 덧입혀 보게 된다. '사람들은 시간으로부터 도려낸 그 무엇이 카메라 '앞'에 놓여 있다고 여긴다. 그렇지 않다. 사진 찍기는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다.'라는 말 덕분에 내가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카메라를 들고 있음에도 두려웠던 순간들, 무언가를 담지 못한다는 부담감이 엄습했던 순간들을 이 책으로 인해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가 종종 잃어버리는 건,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찍는 것 또한)은 '나의 위치'와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대상과 나의 위치의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도 '물리학적인 상식'이 될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낭만적인 배경으로 전락시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저자처럼 '기록하는 성실함' 또한 만끽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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