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초 이야기 -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
요시나가 나오 지음, 송수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환기를 시키려 열어놓은 창문을 닫다가 우연히 앞집의 내부를 보았다. 늘 하숙방처럼 잠만 자고 나가는 요즘 바짝 붙어 있는 앞집에 관심도 없었지만 오늘따라 설거지 하는 모습, tv를 보는 모습 등 동태가 보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나 그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는 없었다. 타인이 들여다본 우리 집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속에 들어가지 않는 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타인의 집은 밀실이다. 전혀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46쪽)' 라는 말에 공감하며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고운초의 '소우 할머니' 때문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 어딘가에 소우 할머니 같은 분이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든 것은 순전히 『고운초 이야기』 때문이다.

 

  부제를 보면 '할머니 탐정의 사건일지'라고 되어있다. 탐정 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게도 흥미가 이는 '할머니 탐정'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에서 의외의 감동을 만난 기분이었다. 정통미를 간직한 탐정소설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사건들이 잔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인물을 그려내는 묘사나 고운초라는 공간을 통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세세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이야기인 「고운초의 소우 할머니」가 데뷔작이라고 하니 주목할 만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일흔여섯의 할머니 탐정이 지팡이를 짚고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나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간 살아온 삶의 경험과 따뜻한 마음씨가 관건이라는 것을 소우 할머니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운초의 소우 할머니」에서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가게를 개조해 커피와 전통도기를 파는 '고쿠라야'를 운영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젊은 시절 이혼해 아이까지 잃어버린 아픈 과거가 맞물린 모습이 나온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목격하게 된 동네 맨션의 이상한 점을 통해 한 아이를 구출해 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창문으로 드러난 피 묻은 손을 빌미로 조금씩 추리를 해 나가긴 하지만 나이를 고려했을 때 격렬한 조사와 열정적인 다가감은 무리였다. 소우 할머니 나름대로 꾸준히 조사해 나가지만 정작 그 집에 학대를 받는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출해 내려 했을 때는 도저히 혼자서 할 수 없었다. 그때 도둑을 만나게 했고, 도둑과 거래를 해서 아이를 구출해 내게 한다. 그 사건은 대서특필되고 소우 할머니는 도둑이 자신에게 아이를 맡기고 갔다며 언론에는 사건의 공을 도둑에게 돌린다.

 

  '내가 잘했더라면 죽지 않았을 아이일세. 그래서 대충 넘어갈 수 없네. 그뿐이야.'(68쪽) 라고 말하는 할머니를 통해 도둑은 아이를 구해 왔지만 그들의 한탄대로 그 아이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른다. 그리고 소우 할머니의 이런 고통은 이 책의 전반부에 두루 나타나는데, 고쿠라야를 운영하는 평범한 할머니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 숨겨있는 상처와 그간 살아온 내력, 소우 할머니 나름대로의 로맨스를 통해 다양한 인간의 삶을 엿볼 수 있어 색다를 묘미를 맛보았다. 「구와바라, 구와바라」에서는 얄미운 동창생을 「0과 1사이」에서는 컴퓨터를 과외를 해주는 대학생을 「나쁜남자」에서는 갑자기 나타나 문제를 일으키는 전직 야구선수를  「싸리를 흔드는 비」에서는 정치가로 성공한 옛 친구를 상대로 소우 할머니의 특유의 친절과 지혜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해결하기도 하고 관여하기도 한다.

 

  소우 할머니의 연로함이 늘 걱정되긴 했으나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 안에서 끊임없이 향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할머니 탐정 일지'라고 했으나 사건들이 할머니에게 다가온 것이 아니라 소우 할머니가 사건들에 귀를 기울였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귀 기울임에 이웃에 대한 따뜻한 마음,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상처를 괴로움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그것을 거둬내려는 노력이 이 소설의 메시지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갈수록 삭막해져가는 사회에서 소우 할머니를 통해 아직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살아갈 만 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이 소설의 의미는 충분하리라. 그런 의미에서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먼저 안부를 여쭈고 귀를 기울여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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