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장을 덮고도 한참을 머무르는 책이 있다. 하룻밤이 지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여운이 사라질까봐 걱정이 되는 늦은 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오히려 며칠이 지나면 이런 복잡함이 차분히 정리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일이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책상머리에 앉아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다. 나는 어떤 세상을 보고 어떤 세상의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한바탕 꿈을 꾼 것일까. 내가 만난 이야기가 정말 우리 곁에 있는 다른 곳의 이야기일까?

 

  "이렇게 먹구사는 법을 먼저 배워야 진짜 일꾼이 되는 거란말야."(23쪽)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잘 하고 있는지, 남들처럼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를 쓰며 열심히 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그런 고민의 근본에는 내가 '일꾼'의 자세가 되어있는가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꽃섬'이라 불리는 쓰레기장에서 나온 음식으로 끓인 일명 '꽃섬탕'을 먹으면서 '먹구사는 법'을 배워가는 딱부리에게 그것은 진정한 배움이 되었을까? 그동안 내가 쓰레기봉투 안에 우겨넣었던 온갖 쓰레기들이 떠오르면서 그것들을 주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자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직 버리지 못한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햄, 곰팡이가 피어 버린 마른반찬들이 들어있는 나의 냉장고가 떠올랐고, 이 음식들을 버리면 어디선가 '꽃섬탕'으로 만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나는 '먹구사는 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져 부끄러워졌다.

 

  꽃섬. '바다가 보이는 낙원'(28쪽)이 아니라 도시의 온갖 쓰레기들이 들어오는 곳. 그곳에서 마치 '물건을 마음 내키는 대로 사다가 쓰고 버린 것처럼 자기네도 더이상 쓸 데가 없어져'(147쪽) 몰려든 사람들이 사는 곳. 특유한 냄새 때문에 어딜 가든 '꽃섬' 사람들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리지 못하는 곳. 그럼에도 쓰레기 안에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꽃섬이었다. 이름과 상반되게 꽃이라곤 피어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도 사람들의 삶이 존재했고,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곳의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별명으로 통했다. 새사람을 만들어 내보낸다는 교육대에 아버지가 끌려가자 엄마와 함께 꽃섬으로 흘러들어온 딱부리나,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도와준 아수라 반장의 아들도 땜통으로 통했다. 그들뿐만 아니라 두더지, 송장메뚜기, 방개도 모두 그곳에 사는 아이들의 별명이었다.

 

  꽃섬은 그런 아이들의 시선과 성장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 순경에게 머리를 쥐어 박히며 얻었던 별명을 쓰는 딱부리와 화상으로 뭔가 조금은 부족하지만 눈치 빠르고 속정이 깊은 땜통이 눈에 띄었다. 그들 눈에 비춰진 꽃섬의 모습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느 시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간과 색깔을 잃어버린 곳. 그곳에서 그들은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개인의 특질을 가질 수 없는 통일된 모습을 갖추고 있는 집단이었다. 아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었고 어른들은 지쳐갔다. '꿈속에서처럼 갑자기 휙하는 순간 무슨 구멍이나 우물이나 아니면 낡은 문 같은 곳을 통과해서 사람들이 사는 동네와는 전혀 다른 이상한 도깨비 나라로 들어서고 말았다.'는 딱부리의 말마따나 그곳은 '이상한 도깨비 나라'라 해도 반박할 수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버린 멀쩡한 것, '하나씩 쥐어보면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던 물건들'(42쪽)과 '생선 머리처럼 원래의 모양을 잃고 복잡하고 자잘하게 분해되어 있어서 기계가 처음 만들어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괴한 사물'(122쪽)로 보이는 것들이 모여드는 곳이 꽃섬이었다. 그런 것들을 분해하고 해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꽃섬 주민들이었다. 아이들에겐 학교란 가끔 가는 교회가 전부였고, 나이를 조금 올려붙여 쓰레기더미에서 어른들과 함께 돈거리를 찾아내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무나 그곳에서 쓰레기를 분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반장에게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수 있는 구조였다. 나름대로의 규칙과 구역이 나눠진 쓰레기를 취급했지만 결코 정겨움이 일지 않는, 싸움이 일고 사고도 나며, 때론 사람까지 죽는 일이 발생하는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같았다. 얼결에 동생이 된 땜통과 딱부리가 보여주는 꽃섬의 세계는 여태껏 내가 맛보지 못한 세계를 드러내듯 모든 것이 적나라했다.

 

  정말 그 곳도 '못 살 데가 어디 있겠냐'(121쪽)고 말하던 만물상 할아버지의 말처럼 지낼 만한 곳일까? 그곳 사람들이 가끔 도시로 나가 일반 시민들처럼 섞일 때가 아니면 그들은 특별하게 구분되어 있는 사람들 같았다. 딱부리의 생각처럼 '쓸 데가 없어져'버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이 살만한 곳이 못 되는 그곳에 그들이 살건만, 그들보다 먼저 존재해왔던 '김서방네 식구들'이 있었다. '빼빼아줌마'의 눈에만 보여 '빼빼아줌마'는 실성한 사람 취급 받았지만 땜통과 딱부리의 눈에도 보이는 '파란 불'로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후에 꽃섬에 큰 불이 났을 때 '세상에 니들만 사는 줄 아냐?'(219쪽)며 몸부림치던, 땜통과 딱부리에게 지금 모습과 전혀 다른 꽃섬을 보여주었던, 땜통에게 메밀묵을 부탁하고 돈이 묻혀 있는 곳을 알려주던 존재들. 빼빼아줌마의 몸을 빌려 연결된 그들은 딱부리와 땜통에게도 실재하는 존재들이었다.

 

  꽃섬의 과거 모습은 상상해내기 힘들지만 아마도 김서방네가 보여주었던 마을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꽃섬을 만든 것은 분명 우리일 것이다.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233쪽)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쓰고 버리는 욕망'이 없었다면 그곳은 전혀 다른 곳으로 불리고 현재와 다른 모습으로 간직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잿더미를 뚫고 온갖 풀꽃들이 솟아'(228쪽)나는 모습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땜통이 맞이하는 비극이 없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김서방네 막내가 말했던 '풀꽃들 씨앗'(137쪽)이 어딘가에 가득 거둬져 꽃섬에 가득 뿌려질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이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234쪽)이 되어 우리 곁에 머물러 있지 않을까? 그럴 때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고 질문하고 싶다던 저자의 마음을 우리가 이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