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드 아틀라스 1
데이비드 미첼 지음, 송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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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탕 하나를 고를 때도 고민이 많아진다. 다양한 맛의 향연 속에서 도대체 어떤 맛을 골라야 나의 미각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복잡하게 생각한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뚜렷한 자긍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우유부단해지고 갈수록 팔랑귀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성향은 고루 퍼지는 반면 좋아하는 작품의 색깔은 점점 흐릿해 진다. 점점 까다로워지는 나의 이런 입맛에 꼭 들어맞는 소설을 오랜만에 만났는데, 바로 『클라우드 아틀라스』다. 31가지 맛을 볼 수 있는 아이스크림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6개의 맛을 드러내는 소설을 만난 것은 확실하다.
 

  두 권의 책을 보면서 당연히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읽었음에도,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 펼쳐진 두 번째 이야기가 전혀 다른 내용이 나와 당황했다. 분명 장편소설인데 왜 이렇게 이야기가 갑자기 끊어져 버리는 걸까 의아했다. 분명 「애덤 어윙의 태평양 일지」에서는 19세기를 배경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애덤 어윙이란 사람의 항해일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제델헴에서 온 편지」는 어윙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로버트 프로비셔라는 청년이 모든 것을 잃고 작곡가의 비서로 들어가는 내용이 나온다. 배경은 1930년대였고 제목처럼 친구와의 편지 교환으로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이겨내는 청년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드러나,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어떻게 장편소설이 될 수 있나 싶었다. 그러나 저자는 인내하는 독자를 달래기라도 하듯 여섯 편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롭게 이어가기 시작했다.

 

  「제델헴에서 온 편지」에서는 로버트 프로비셔가 작곡가의 집에서 우연히 애덤 어윙의 항해일지를 발견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애덤 어윙의 이야기」가 뚝 끊겨버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어 의구심이 들 무렵, 저자는 다른 이야기의, 다른 인물을 통해 앞의 이야기를 다르게 조명해 주었다. 애덤 어윙은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 배 안에서 만난 의사와 친해져 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은 좋아지지 않았는데 로버트 프로비셔는 애덤 어윙이 그 의사에게 속고 있다고 지적한다. 배경은 또 다시 바뀌어 1970년대 미국의 핵발전소의 음모를 캐내는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 미스터리」 이야기가 펼쳐진다. 핵발전소의 결함을 알고 있는 물리학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며 여기자 루이자 레이에게 사실을 폭로하려 하지만 그는 살해당하고 만다. 이에 의문을 가진 루이자 레이는 이 사건을 해결해 가다 물리학자의 유품에서 로버트 프로비셔의 편지들을 발견한다.

 

  로버트 프로비셔는 자신이 작곡한 곡을 가로채려는 스승, 약을 대로 약은 그의 부인과 불륜을 일으키지만 결국 <클라우드 아틀라스 육중주>를 완성하고, 막 뜨려던 참에 죽었다는 사실이 「반감기-첫번째 루이자 레이 미스터리」 에서 밝혀진다. 네 번째 이야기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 떨리는 시련」에서는 21세기 초로 배경을 옮겨와 출판사 사장 티머시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그만 출판사를 운영하던 그는 한 사건으로 인해 대박을 터트리지만, 오히려 그 행운으로 협박을 당해 먼 곳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동생이 알려준 곳이라 안심하고 찾아갔지만 그곳은 강제 요양원이었고,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아 스스로 탈출을 감행해야 하는 곳이었다. 그가 출판사 사장일 때 받게 되는 소설의 제목으로 「반감기」, 부제로는 「첫번째 루이자 레이 미스터리」가 나온다.

 

  다섯 번째 「손미~451의 오리즌」에서는 근 미래 한국으로 옮겨와 최하층으로 살아가는 복제인간 손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순혈인간들은 복제인간들을 부리며 살아가는데, 그들에게는 많은 것이 절제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특히 지적인 능력을 억제시켜왔는데 손미 451이란 이름을 가진 복제인간에 지적상승이 일어나게 된다. 그로인해 겪게 되는 최하층 복제인간의 고통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맛보게 되는 이야기들이 모두 펼쳐진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호감이 갔다. 서울의 수많은 지리가 등장하는 것부터 주인공의 한국식 이름까지, 이 소설이 탄생한 배경이 궁금해질 정도였다. 소설에서 말하는 과거에서 미래의 모습을 읽는 듯한 착각이 일었고, 역시나 「티머시 캐번디시의 치 떨리는 시련」의 언급도 빠지지 않았다.

 

  여섯 번째 「슬로샤 나루터와 모든 일이 지나간 후」에서는 모든 문명이 파괴된 후 하와이 섬에 살아남은 부족들이 이야기가 펼쳐진다. 주인공 자크리는 야만족 때문에 가족을 잃은 아픔을 담고 있는데, 그가 믿고 있는 신으로 손미가 등장한다. 그리고 손미의 영상이 담긴 화면을 보게 되기도 한다. 유일하게 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달리 중단되지 않고 완결이 된다. 그리고 다시 거꾸로 「손미~451의 오리즌」의 이야기부터 타고 올라가 「애덤 어윙의 태평양 일지」까지 다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앞에서 간간히 보여주었던 복선이 아닌 후반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독특한 구성만큼이나 이야기의 소재, 문체 등 모든 것이 달라 한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함을 맛본 소설이었다. 항해일지, 스릴러, 편지소설, 미지의 세계를 엿보는 미래소설까지 한 권의 소설에 연관성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묘한 연관성을 지닌 소설들이 등장해 독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충족시켜 준 기분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깔깔거리며 웃다가, 과거와 미래로 깊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현재를 잊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소설을 시대 순으로 나열하긴 했지만 굳이 시작과 끝을 구별하지 않는 구성도 돋보였다. 또한 제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놓으면서 교묘하게 연결되는 이야기 속에서 각각의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을 문명이라는 거대한 틀로 낱낱이 드러내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하나의 장편소설이 얼마나 다채롭게 변화하고,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8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완성도나 만족도 면에서 충분히 호평을 들을 수 있는 소설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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