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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책을 보고 있는 노부인이 심상치 않다. 어떤 사연을 갖고 있기에 저렇게 즐거운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라고 하니 분명 특별한 독자일거라 여겼다. 표지의 주인공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였다. 어느 날 버킹엄 궁에서 개 짖는 소리에 이끌려 이동도서관을 가게 된다. 거기서 주방에서 일하는 노먼을 만나게 되고, 예의상 책을 빌려온다. 그렇게 한 권씩 빌려온 책들을 읽다보니 책에게 마음을 뺏기게 되었고, 업무에 지장을 줄 정도로 책을 읽게 된다. 그 전처럼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실수 연발에 심지어 모든 대화를 책과 연관시키는 여왕의 변화에 모두들 당황한다. 하지만 여왕은 자신의 변화보다 이제야 책을 만나게 되어 억울하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책을 읽으며 보내는 하루가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여왕은 책의 매력에 빠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된다.
"여왕에게 독서란, 작가에게 글쓰기와 같은 의미였다. 즉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작가가 글을 쓸 숙명을 받아들이듯 여왕은 책을 읽을 숙명을 인생의 이 황혼기에 받아들여야 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풍부한 독서를 하게 된 여왕은 독자를 넘어 작가의 영역까지 꿈꾸게 된다. 그래서 자신이 작위를 주었던 작가들에게 많은 것들을 얻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번번이 실망하게 되고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만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작가란 소설 속 인물처럼 독자의 상상 속 인물을 뿐이라고.' 마음을 정한다. 평안하고 안정된 노년의 삶이 책으로 인해 이렇게 바뀌어 버린 것에 대해 여왕 자신도 혼란스러워 했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은 그런 여왕을 말리고 싶어 했다. 책이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왕의 노년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왕이 책을 좋아하고,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모습은 무척 진지하다.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맞게 되는 즐거움과 난관이 모두 보인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인 여왕의 행보는 흥미로웠다.
또한 책을 통해 많은 것이 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문장들이 무척 좋았다. '책은 심심풀이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네. 책은 다른 삶, 다른 세상을 이루는 것이야.', '독자는 누구나 평등하다.', '독서는 자유롭고 광범위하고 쉴새없이 마음을 끌어.' 라는 문장만 보아도 여왕의 변화를 모색해 볼 수 있다. 책 속에서 권위를 찾으려 하지 않고, 저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스스로를 만학도 라고 불렀듯이 여왕은 지금껏 살아왔던 삶과는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다양한 메시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왕이 책 때문에 변화 되는 것을 바라지 않은 비서관과 총리가 노먼을 떼어 놓기도 하고, 왕실의 보수적인 면과 형식에 사로잡힌 관료주의를 풍자하기도 한다. 분명 얇은 책인데도 많은 것을 담고 있어 때론 즐거움을, 때론 묵직함을 느끼기도 했다. 과연 여왕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정리할까. 언제까지고 이렇게 독서만 할 수도 없고, 글쓰기에 대한 욕망만 키워나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든 살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구도 생각지 못한 중대한 발표를 한다.
그 발표로 책은 끝을 맺었기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선택을 할 만큼 여왕에겐 책이란 큰 의미였고,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는 매개물이 되었던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 폰의 영향 때문에 더욱 더 사람들이 책을 찾지 않는다고 하는데, 여왕에게 미쳤던 영향만큼은 아니더라도 새로운 세계를 만날 기회가 줄어든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 '책을 읽는 사람'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고 지은이가 던지는 걱정과 충고인지도 모른다.' 라는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실로 방대하다. 이런 방대함을 누리기를 포기하지 않고, 책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면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긍정적인 의미로 남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