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코너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1
존 치버 지음, 박영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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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내 안에 또 다른 나를 만날 때마다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나의 이런 모습을 타인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이런 마음들이 들어 있는 나를 과연 알기나 할까 하는 자괴감이 밀려오기도 한다. 대부분 그런 내면을 잘 숨겨오며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종종 예기치 않은 곳에서 내면을 들통 날 때도 많다. 그럴때면 누구나 인간의 내면에 이중인격을 가지고 있는데 삶이라는 것이 그것을 잘 감추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나를 탈탈 털어 햇볕에 바짝 말려 다시 삶을 시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씩 내 안의 케케묵은 먼지들을 털어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요즘이다.
 

  『팔코너』의 이야기를 꺼내려다 보니 혼잣말이 길어졌다. 패러것이란 남자를 알고 나니, 그를 비난하기보다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 속에는 마약중독자, 형을 죽인 살인자로 감옥에 갇혀 있는 그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냐고 비난이라도 실컷 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감옥이라는 곳을 통해 이중성을 다 드러내고, 자유를 갈망하는 그를 보게 된 것 같아 무척 혼란스럽다. 패러것이야말로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섰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죄를 저지르고, 정당하지 못하는 방법의 연속일지라도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이야말로 내면을 감추고 살아가는 현대인들보다 훨씬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패러것은 형을 죽였다는 죄로 감옥 팔코너에 들어오게 되지만 그가 왜 형을 죽이게 되었고, 어떻게 죽였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되지 않는다. 그가 저지른 죄 때문에 심히 괴로워하고 많은 부분을 할애해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볼 수 있을 거란 나의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오히려 대학교수라는 신분도, 죄를 짓고 들어왔다는 명목을 잠시 잊은 채, 그는 팔코너라는 감옥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이곳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자유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팔코너 감옥에서 재소자들과의 새로운 터전을 영위해 나가면서 그는 바깥세상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배워나간다. 창살 밖으로 보이는 조각하늘이 자신이 볼 수 있는 풍경의 전부라는 것, 동성애, 수감자와 교도관의 폭력성,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면의 거친 면들을 그곳에서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 안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 순탄하지 못했던 결혼생활, 결코 정겹지 않은 아내와의 추억들이 그려진다. 또한 패러것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당시 미국인들의 실생활을 농밀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이 소설의 압권일 것이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떠올리고 있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팔코너에 갇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당연한 노선을 그리며 이곳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 오히려 이곳이 그의 인생의 절정이 되어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줄 것 같다는 착각이 일 정도로 패러것이란 인물을 주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깥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았다. 수감 첫 날 자신을 비웃던 치킨 넘버 투의 죽음으로 그는 탈출을 하게 되는데 그가 성공적인 탈출을 했는지, 그가 원하는 자유를 찾았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소설은 끝이 난다. 오로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결말 앞에서 허무함을 느끼기보다 그가 차라리 멀리멀리 무사히 도망가기를 원했다. 이제 막 바깥세상에 당도한 그가 가진 불안을 씻어내고 지금까지의 삶(감옥을 들어오기 전의 삶과 감옥 안에서의 삶)을 모두 잊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랐다. 나의 내면에 있는 갈망을 패러것에 힘껏 불어 넣어 대리만족을 느끼고 싶을지라도 그가 꼭 그래주길 간절히 원했다.

 

  오늘도 나는 나의 내면 속의 부끄러운 것들을 잠 감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금은 긴장감을 푼 채, 패러것과 다시 한 번 조우했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이런 내 모습이 오히려 편안하다. 감히 내면의 것을 끄집어 내지 못하고 행동으로 보이지 못한 비겁함이, 패러것이란 인물 앞에서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압축된다. 그렇다고 그가 절대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은 아니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갈망을 향해 과감히 발걸음을 내 디뎠다는 점은 부러울 정도다. 패러것처럼 감옥 안에서 그러한 사실들을 깨닫기보다, 보이지 않는 창살을 하나하나 걷어내며 내가 속해있는 곳을 진정한 자유의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최고의 자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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