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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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책장의 책들이 약간 무서워졌다. 책들이 불쑥 말을 걸 것도 같고, 내가 없는 사이에 자기네들끼리 서열을 지어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할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의 주인공 유리코의 오빠 히로키는 책에 씌어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오빠를 구하기 위해 초등학생인 유리코는 머나먼 세계로 무거운 짐을 안고 떠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담고 있다 보니 내 책장의 책들이 가벼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물론, 선한 길로 인도할 것만 같은 책들이 시시탐탐 독자를 노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평범하던 가정에, 무엇보다 모범생이고 정직했던 오빠가 동급생 둘을 칼로 찌르고 사라진 사건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오빠가 칼로 찌른 동급생 한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한명도 중태에 빠졌다. 오빠는 왜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일까. 그런 오빠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빠가 저지른 사건은 학교와 사회에도 충격으로 다가왔고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다. 부모님은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런 오빠가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을 기다렸다. 유리코는 의아함이 가득한 가운데 오빠의 방을 둘러보다 얼마 전에 오빠가 방의 창문 밖에서 검은 형체를 바라보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때 유리코에게 말을 거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유리코에게 말을 건 것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었다. 오빠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책, 아쥬었다. 화들짝 놀란 유리는 아쥬를 통해 오빠가 '영웅'에 홀려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오빠가 영웅의 서를 발견하게 된 할아버지의 양자의 별장으로 부모님께 핑계를 대서 함께 향하게 된다. 그 곳에서 마난 다른 책들로부터 '영웅'의 본체는 이 '테두리'에 없다는 것과 다른 곳에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힘을 전할 수 있는 일종의 사본이 몇 권 있는데 오빠가 만난 책이 그 책들 중 하나인 '엘름의 서'였다.

 

  아쥬를 비롯한 다른 책들에게서 영웅의 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은 유리는 오빠를 구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감당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쥐로 변한 아쥬와 함께 책들의 도움을 받아 전혀 다른 세계인 이름 없는 땅으로 오빠를 구하러 간다. 어린 유리코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이었지만 오빠가 저지른 일이 아니란 것을 믿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싶었다. 그리고 오빠가 왕따를 당하던 동급생을 돕다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더더욱 오빠를 구해 현세로 돌아와야 했고, 영웅의 서의 역사에 감춰진 이면의 세계를 철저히 맛보게 된다.

 

  유리코는 악한 영웅의 서를 쫓아 없애려는 늑대라고 불리는 애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인간시절의 죄업 때문에 평생 노동을 해야 하는 무명승 소라도 만나게 된다. 소라를 받아들일 처지가 아니었음에도 그의 처지가 불쌍해 같이 동행하게 되는데, 그 무명승의 정체가 책의 끝에 밝혀짐으로 최고의 반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영웅의 봉인이 풀려 사악한 힘을 발휘하게 된 시점에서 오빠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건의 발원지인 헤이틀랜드로 향해서 그곳의 역사와 영웅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것들을 모두 알아버린 유리코를 바라보고 있자니 처연한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방대한 세계 속에서 유리코는 너무나 작아 보였고, 어떠한 힘도 발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유리코에게 오빠를 구하는 일 자체가 처음부터 무리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유리코를 돕는 무리들이 있어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아쥬는 물론 조금은 호의적인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유리코와 어느 정도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늑대 애시, 특별한 존재감을 갖지 않고 시시때때로 도움을 주는 무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영웅의 힘을 빌어서라도 인간세계에서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을 행하려 했던 한 남자의 정체는 씁쓸하기만 했다. 그의 목적이 이뤄지지 않았음은 물론, 그 잘못된 생각으로 유리코의 오빠가 희생되었다. 그리고 영웅의 사악함은 언제든지 현세를 위협할 수 있었다. 그것을 막기엔 유리코의 존재가 너무 미미했지만 유리코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품을 수 있다는 결말은 희망을 말해주는 듯 했다.

 

  어쩌면 사건이 터진 시점부터 이런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코를 따라 사건의 계기를 알게 되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면서도 희망을 버리진 않았지만, 너무나 생소하고 방대한 판타지 세계에 넋을 잃고 말았다. 늘 사회문제를 저변에 깔고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저자의 역량을 또 한 번 느끼면서도  길고 긴 여행의 공간이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만만치 않음도 느꼈다. 유리코의 오빠가 왕따 문제로 그런 사건을 일으키게 된 것, 인간의 영역을 넘어 다른 힘을 이용하려 했던 것, 어설픈 영웅의 인간의 심리를 사악하게 쓰려 했던 무리들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질척함을 바라본 것 같다. 인간이 그런 욕망을 이겨낼 수 없다면 언제든지 유리코의 오빠처럼 희생당할 수 있고, 영웅의 힘을 엉뚱하게 쓰려는 남자처럼 언제든 유혹당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이 사악함으로 물들지 않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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