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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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초만 해도 나는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또 한살을 먹었다는 두려움, 이별, 여전히 찾을 수 없는 내 앞길에 대한 막막함으로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에겐 희망이 없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스스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길이 나를 찾아와 주길 마냥 기다렸다.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고 하면 너무 빤한 결말일까? 마법사 앞에 나타난 브리다, 혹은 브리다 앞에 나타난 마법사처럼 나는 새로운 길을 향해 용기 있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지금껏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은 몰랐다.

 

  "일단 길을 발견하게 되면 두려워해선 안 되네. 실수를 감당할 용기도 필요해. 실망과 패배감, 좌절은 신께서 길을 드러내 보이는 데 사용하는 도구일세."

 

  대뜸 "마법을 배우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브리다를 받아들이며 마법사가 그녀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여전히 희망 없이 무작정 새로운 길을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다면, 마법사의 말이 와 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길을 찾아야 두려움을 감추건 드러내건 하지 않겠냐고 타박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 딛고 있던 내게 마법사의 말은 브리다에게 만큼이나 내게도 강렬하게 전해져 왔다. 새로운 길에 들어섰을 때 순식간에 두려움과 떨림에 점령당해 버렸다. 하지만 그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던 일을 이뤘다는 기쁨도 잠시 어느새 실수할까 전전긍긍하고, 좌절할까 안절부절 못하는 내 모습이 단박에 드러나  버린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갓 스무 살이 된 브리다와 새로운 세계에 발을 디딘 나와 공통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다는 마법을 배우려 마법사를 찾고, 태양 전승, 달 전승 등을 배우지만 그것을 행위로만 단정 지을 수 없다. 브리다는 그 과정에서 사랑, 자아, 꿈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 그녀를 보자마자 자신의 반쪽이라고 느끼는 마법사나 그녀를 가르치는 위카는 내 주변에서 끊임없이 용기를 주었던 지인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브리다가 적극적으로 나온 반면에 소극적으로 대처해 이렇게 늦은 나이에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브리다와 내가 맛본 만족감은 비슷하리라. 브리다는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 미지의 세계로 열정적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모두 보여주었다. 그런 브리다를 바라보며 나에게도 무한한 세계가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다.

 

  "살아가다보면 어느 한 순간, 우리 모두는 자신의 소울메이트와 만나고 그를 알아보지."

 

  마법사는 브리다를 처음 본 순간 자신이 그토록 기다려온 소울메이트라는 것을 알아챈다. 브리다는 마법사의 가르침을 통해 현재의 남자친구가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사랑에 감수해야 할 위험이란 없어.' 라고 말하는 마법사를 보면서 '둘 이상의 소울메이트를 만날 수도 있다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마법사와 위카가 그럴 뻔 했고, 브리다는 그런 위험을 눈치 채지 못했지만 '사랑이 자유라는 것을 언제나 기억할게.'라고 말하는 또 다른 소울메이트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을 얻었을 땐 마법사와 위카를 통해 많은 배움을 얻은 뒤였다. 위카에게 일주일에 세 번 타로카드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바라보라는 과제를 받고 혼란스러워하며 '왜 카드로 미래를 읽으면 안 되는 거죠?' 라고 묻자 '오직 현재만이 우리 삶에 힘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지.'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브리다의 배움의 과정을 엿보면서 위카의 그런 대답은 혼란을 더 야기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만이 삶에 힘을 미칠 수 있다고 했지만 브리다가 배우고 느끼는 것들은 현재의 모습에서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가 배움을 통해 '지금 포기하면, 살면서 선택을 하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리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현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나날이 진화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때론 더 모호하고 불투명해지는 것들의 등장이 잦았으나, 그녀가 원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을 바꾼다는 건, 내면에 존재하는 것을 바꾸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지."

 

  브리다는 자신에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겉보기에 별 의미 없어 보이는 일련의 수련들이 자신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들이 어떠한 것들인지 깨닫기 위해 도전을 했고 용기를 냈으며, 내면에 느껴지는 것들을 표출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이제 막 성인이 된 브리다의 내면에도 충만함이 가득했다. 혼란스럽고 방황할 수도 있는 20대, 자신과 대면하기 싫어 혹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작은 울림이 되었으면 한다. 브리다의 과정이 맞지 않는다면 그녀가 찾아내고 깨달은 것들을 보고, 그녀가 만들어낸 결말이 모호하다면 자신은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 길인지, 옳게 가고 있는 건지, 타인의 뒷등을 보며 가는 건 아닌지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라고 위로해주고 싶다. 시간이 좀 걸리는 것뿐이지 자신의 때라는 것이 오지 않을 때가 없다는 것을 브리다가 성숙해진 모습을 보며,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며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는 자는 자신뿐이다. 물론 다른 이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만 내 삶의 주체는 바로 나다. 그렇기에 용기를 가지고 한걸음씩 내 디뎌 보길 바란다. 조금 더딜 뿐 내가 가는 길이 허튼 길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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