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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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작가가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고 나서야 어떤 작품의 저자가 아닌 오롯한 이름으로 기억하게  되었다.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는 오래전부터 찜하고 있던 책이라서 그의 수상 소식이 마냥 신기했다. 김영하님의 책 속에서 언급되었던 책이라 오랫동안 궁금했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를 먼저 읽게 된 데는 입소문 덕분이었다. 간략한 줄거리를 알고 나서 우울할거라 단정 지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재미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을 읽으며 '판탈레온'이란 인물의 진지함과 저자의 능글맞은 유도에 깔깔대며 읽었다. 나의 웃음은 저자가 깔아놓은 블랙유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음에도 절대 '판탈레온'을 미워할 수도, 저자를 비방할 수도 없는 문학적 해소의 웃음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얼마 전 직속상관이 불법적인 일을 시키면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단칼에 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는데, 만약 현실이 된다면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 딱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의 상황과 맞물렸다.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는 '천부적인 조직력, 정확하고 엄밀한 질서 의식,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장군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는다. 바로 수국초특(수비대와 국경 및 인근 초소를 위한 특별봉사대)을 이끌어가는 임무였다. 아마존 밀림의 고립된 부대에서 병사들이 인근 마을의 여자들을 겁탈하면서 성욕을 풀어내고 있어 항의가 빗발치고 있었다. 군 당국은 비밀리에 창녀들을 고용해 군사들의 성욕을 풀어주라는 임무를 판탈레온 대위에게 맡긴다. 판탈레온 대위는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지만 결국 그 임무를 맡고 부인과 어머니를 데리고 그곳으로 떠난다.

 

  판탈레온 대위는 이 임무에 대해 가족에게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군인이 아닌 사업가 행세를 하며 군부대에 창녀들을 고용하는데, 후일에는 가족을 제외한 인근 주민들은 그가 하는 사업의 내용을 모두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것이 일급비밀인 척 진지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그 진지함이 웃음을 유발한다. 먼저는 너무나 상세하고 장황한 보고서가 그가 이 임무를 얼마나 중요시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특별봉사대(창녀들)를 이용 가능자 수(8,726명) 개인당 월평균 희망 횟수(12회), 개인당 평균 소요 시간(30분)까지 상세히 적고 있다. 그리고 몇 명의 창녀들이 몇 명의 군인의 성욕을 풀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수치가 계산되어 있다. 창녀들 고용에 힘을 써줄 인물들에 대한 노골적인 별명 기재도, 여성의 생리기간을 계산하지 못해 수정한 특별봉사대의 필요인원(2,271명)까지 진지하게 쓰고 있으니 어찌 그의 임무를 우습게 볼 수 있겠는가.

 

  거기다 보고서의 말미에는 능청스럽게 '하느님의 은총이 깃들길.' 이란 문장을 꼭 남겨 놓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그의 보고서를 보고 있노라면 진지함과 성실함,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이 늘 가상하게 느껴진다. 또한 군인들의 성욕이 아마존 지역의 분홍돌고래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직접 자신이 음식을 섭취하고 부인에게 실험까지 한다. 자신의 아내를 '숙녀'라 지칭하고 자신은 최선을 다했노라고 보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특별봉사대의 성격을 잊고 그의 임무 방식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드디어 첫번째 특별봉사대가 초소에 들어오지만, 특별봉사대에 만족한 병사들의 사기를 돋우고자 인원을 증원하는 일까지 벌이게 된다. 그야말로 판탈레온은 '수국초특'의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 헌신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말도 안되는 이런 계획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면서 인근에 소문이 퍼진다. 판탈레온이 특별봉사대를 이끌고 있으며,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여자들이 얼마나 애쓰는지 까지 나오는데 정작 판탈레온 대위와 그의 어머니는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 아내는 편지로  여동생에게 그곳의 생활을 능글맞게(이 부분에서는 부부가 무척 닮은 것 같다.) 써가고, 판탈레온 대위는 특별봉사대를 이끄는 인물들의 말투까지 흉내 내며 유대감을 형성해 간다. 한편 자기 아내와 딸들을 덮친다고 난리치던 사람들은 매력적인 창녀들이 초소를 드나드는 것을 보고 자기들이 덮칠 여자가 없다고 항의를 해 온다. 인근 부대에서도 특별봉사대를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제안이 오고 그야말로 판탈레온 대위는 이 임무를 너무 잘 수행해서 예기치 않은 잡음을 만들어 내는 인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특별봉사대의 대원이 장교와 결혼해서 발각돼 일자리를 잃게 되자 다시 고용해 달라는 길고 긴 편지를 판탈레온 대위의 아내인 포치타에게 보내고 만다. 그 편지로 인해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된 포치타는 경악을 하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판탈레온 대위는 특별봉사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명 '미스 브라질'을 애인으로 삼고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포치타는 어린 딸을 데리고 판탈레온 대위 곁을 떠나고, 판탈레온의 삶은 그야말로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만다. 누구보다도 능력 있고 성실하던 그였는데, 이 특별한 임무 때문에 가정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거기다 '미스 브라질'이 불만을 품은 이키토스 주민들에게 살해되자 그녀가 훌륭한 임무를 잘 수행했다며 장교복을 입고 그녀의 장례식을 화려하게 치러주는 것도 모자라 송덕문까지 읽는다. 그 장례식을 통해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임무를 만천하에 알리는 계기가 된다.

 

  이런 모든 사실을 군 당국에서도 알게 되고 그는 직업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다. 항의가 빗발치자 부랴부랴 특별봉사대를 해체하고 판탈레온 대위를 제대시키려 한다. 하지만 판탈레온 대위는 끝까지 군에 남기를 원했고, 강등된 채 티티카카 호수에서의 수비대의 하루를 맞는 것으로 끝이 난다. 소설이 정점에 달할수록 그의 운명과 포치타와의 관계가 무척 궁금했는데 소설의 시작처럼 소설의 끝에서도 그를 깨우는 사람은 그의 아내였다. 어찌되었든 그의 곁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 그가 군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긴 했으나 이 능글맞은 소설을 마냥 재미난다고 웃고 있을 수만은 없다. 옮긴이도 말했듯이 이 소설은 '유머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는 정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그것을 일일이 캐낼 필요가 없는 것은 소설의 많은 사건들과 그에 따른 결과가 그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재미나게 읽히는 것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수많은 문제점과 난관 속에서도 시종일관 진지한 판탈레온 대위가 소설의 중심에 있듯이 한 동안 그가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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