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일 사건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침에 눈을 뜨면 밖의 날씨를 살피며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에 따라서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은 안개가 뿌옇게 내려앉아 하루의 시작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 안개가 하루의 시작을 가로막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날씨도 가늠할 수 없고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들처럼 몽환적인 분위기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함께 얼마 전에 만난 위화의 소설 『4월 3일 사건』이 자연스레 생각이 났다. 


  겉표지의 소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면 큰 비밀이 밝혀지기라도 하듯 『4월 3일 사건』을 강조하고 있다. 도대체 4월 3일에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소년은 얼굴을 가리고 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4월 3일 사건』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카프카의 『소송』을 떠올리게 되었다. 소송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의 죽임을 당한 주인공이 생각났다. 한 소년의 시선으로 그려지는  『4월 3일 사건』도  기이하기만 했다. 어른들은 모두 4월 3일을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조심스레 준비하기도 하고, 이웃은 누군가에게 쫓기기도 한다. 소년은 그 음모가 자신을 향해있다 생각하고, 나름대로 음모에 맞서려 하지만 결국 4월 3일의 정체는 드러나지 않는다. 


  정체를 들어 내지 않은 『4월 3일 사건』은 인간의 불안한 내면과 공포, 두려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년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 부모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은 규명되어지지 않은 사건들을 대변해 주고 있는 듯했다. 저자 또한 “왜 이렇게 많은 죽음과 폭력적인 상황들이 삶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말한 바 있으니, 『4월 3일 사건』이 저자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낸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4편의 중편은 다양한 색깔을 지닌 채 비교적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여름 태풍>은 자연재해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는 인간군상을 다루고 있었다. 지진이 일어 날거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 사람들은 천막을 짓고 대피한다. 사람들은 지진을 피해 방수포 안으로 대피했지만 정작 그들을 찾아온 것은 장마였다. 방수포 안의 장마는 사람들을 질병과 죽음, 우울로 내 몰아갔다. 그럼에도 그들은 장마보다 지진을 더 걱정했다. 지진을 측정하는 바이수란 소년과 장마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람들의 모습이 병행으로 그려지면서 혼란은 절정에 달했다. 그것은 끝을 알 수 없는 무너짐의 시작이었다. 장마가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이, 지진을 측정했던 바이수의 진실이 밝혀질듯 하다가도 모호하게 소설은 끝이 난다. 인간의 내면에 늘 현재진행형인 불안을 드러내듯 딱 부러진 결말을 낸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지주의 죽음>은 중일 전쟁이 배경이 되고 있었다. 일본군이 중국 양민들을 무차별로 살해하고 있을 때, 한 지주의 아들은 일본군을 일부러 엉뚱한 길로 안내한다. 애국심이라기보다 기본적인 도덕심에 의한 자발적인 안내와 죽음을 불러온 행동이었다. 그런 만큼 더 애잔하고 어느 누구의 편을 들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안타까움이 함께 따라왔다. 일본군의 괴롭힘은 잔인할 정도로 세세하게 그려졌고, 그런 상황에서 누구도 희망을 가진다는 것이 무리일 정도로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죽음 앞에서 마음 싸한 슬픔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처연할 정도로 전쟁은 사람들을 메마르게 만들어 갔다. 


  <조상>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 나타난 괴수를 아이의 시선으로 다루고 있었는데, 아이에게 호의적인 괴수를 어른들은 처치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아이를 납치해 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으나, 납치당한 아이를 제때 구하지 못한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것부터 시작해 괴수를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을 납치해간 괴수에 대해 아이는 그가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결국 아이 앞에 다시 나타난 괴수를 마을 사람들은 낫으로 찔러 죽인다. 그리고 괴수의 고기를 조각내 나눠먹는 모습을 보면서 끔찍함을 느꼈다. 그 괴수가 자신들의 조상이었다며 한탄하는 마을 선생의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느끼지 못한 채 두려움을 향해 여전히 낫질을 할 뿐이었다. 


  이렇듯 모호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네 편의 독특한 중편들은 저자가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쓴 작품 가운데 직접 선정해서 묶었다고 한다. 과감한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라는 평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색깔을 지닌 소설들이었다. 오늘 아침 내가 목도한 안개처럼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이 가득 내제되어 있는 작품들이었지만, 두려움의 중심으로 들어가려는 저자의 의도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두려움과 폭력을 어쩌지는 못했으나 접근과 시도가 색다름을 전해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명확히 알 수 없더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의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아닐지라도, 나 혼자만 동떨어진 두려움이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작품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