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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이 책을 처음 읽었던 곳은 공항이었다. 중요한 일 때문에 볼 일이 있어 국내선을 타면서 들고 갔던 책이 <어.나.벨>이었다. 책을 읽기 전 책 머리에 당시의 느낌을 간단하게 남겨 놓았는데, 다시 꺼내서 읽어보니 그때의 일이 벌써 까마득한 것 같아 새삼 놀라웠다. 당시의 기대가 현재 이루어졌음에도 하루하루를 밀어내듯 살아온 내가 부끄러웠다. 또한 책 속에서 마주한 청춘들의 혼란이, 잊고 있던 나의 과거를 건드려 현재의 내 모습이 낯설어지고 말았다. 20살에 겪었던 성장통과 고뇌들이 꼭꼭 잠가놓았던 마음의 문을 비집고 나와 내 모든 것을 헤집어 놓은 기분이다.
'시간은 언제나 밀려오지만 똑같은 날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젊은 날에 인식하고 있었다면 뭔가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정윤은 팔 년 만에 걸려온 그의 전화 앞에 이런 생각을 품는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나의 섣부른 후회를 만들어 냈다. 나도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 거란 생각. 똑같은 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며 청춘을 보냈더라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나를 만나고 있지 않을까란 부질없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란 문장 앞에서도 후회가 밀려왔다. 내 멋대로 기억하고 판단하고 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끄집어내어 주변인들에게까지 인식시켰던 어리석음이 후회가 되어 나를 계속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서른의 나이에 스무 살 적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미 건너버린 강을 그리워만 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당시에 내 마음을 차지했던 사랑, 이루고 싶은 꿈, 알 수 없는 방황들이 쉴 새 없이 몰려와 당황스러웠다. 정윤과 명서, 미루, 단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스무 살의 행복과 고통이 동시에 찾아오곤 했다. 보이지 않는 길을 향해 빙빙 돌아서 오는 삶을 살아온 듯한 그들이 처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마음 아프기도 했다. 네 명의 청춘의 내면은 길들여지지 않은 각자의 고통이 내제해 있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상을 향해 똑바로 서 있지 못하는 정윤, 언니의 죽음의 흔적을 벗어나지 못하는 미루, 미루 언니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녀 곁을 지키는 명서, 정윤의 소꿉친구이자 그녀를 몹시 사랑했던 단. 그들은 운명처럼 필연처럼 묘하게 만나 얽히고설키다 처연한 고통을 남겨놓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에 또 다른 내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일었다. 아침마다 깻잎에 밥을 말아 먹으면서 정윤을 생각했다. 제대하지 못하고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이한 단이를 보면서 군대에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카가 생각났다. 에밀리를 보며 어릴 적 키우던 고양이를 생각했고, 모범생이었다던 명서를 보면서 짝사랑했던 동네오빠가 떠올랐다. 이렇듯 감추고만 싶었던 내 삶의 잔재가 이 소설로 모두 드러나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이에게, 혹은 나와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자란 누군가에게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미소와 함께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다면, 내면의 고통이 모두 쏟아져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현재를 살아가도 고통이고, 현재를 이어가지 못해도 고통으로 기억되는 이들에게 어떠한 선택이 있을까. 네 명의 청춘들이 품고 있는 고뇌와 방황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어떠한 선택을 하든 아릿한 쓰라림이 그들과 함께 딸려 나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정윤과 명서가 서로를 깊이 원하는 것, 정윤을 만나면서 미루의 고통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이 죽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여지를 보여준 단.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으나, 그들의 이끌림에 의해 나 또한 피할 수 없는 길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미루와 단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삶은 그들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왔다. 왜 이세상은 이토록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가. 고통으로 얼룩진 젊은이들이 왜 힘겹게 살아야 하는가. 고통으로 가득한 시대밖에 줄 수 없는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떠올랐을 그들. 그들은 용케도 서로 만나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 순간은 관계의 벽을 허물고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갔으나, 그들이 각자 흩어졌을 때는 마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자주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청춘. 그 불안하고 확실하지 못한 것에 무엇을 덧댈 수 있으랴. 또한 그들과 같은 나이를 지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어찌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으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할 정도로, 먼 길을 돌아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이 안쓰러울 뿐, 어느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특별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크리스토프'였다. 아이 하나를 어깨에 태운 채 강을 건너면서 '마치 이 세상 전체를 내 어깨에 지고 있는 것 같'은 크리스토프처럼 그들은 각자의 어깨에 각자의 세계를 짊어지느라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내디딜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소설의 전개도, 끝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담담해져만 갔다. 고백이 덧대어 질 때마다 소설의 흐름은 심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나는 평행선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정윤과 명서의 만남, 헤어짐, 재회, 단이와 미루의 죽음 앞에서도 비교적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여 내 마음이 쓰라림으로 가득할지라도, 도저히 드러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끄집어내어진 수많은 기억들로 인해 중간 중간 심호흡이 필요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저릿저릿하게 남아있는 고통들로 허우적대면서도 먼 길을 돌아 현재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서른의 나이에서 스무 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더이상 고통으로만 당시를 기억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남김이 되었다. 또한 각자의 삶의 굴곡이 다르다고 무시해버리던 타인의 내면을 조금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도 같다. 그것이 바깥으로 나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한지, 얼마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지를 그들로부터 알게 되었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가 글을 쓰는 과정의 한 부분이기도 할 것'이다라고 말한 저자처럼, 이 책을 통해 고통의 한켠에 작은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